“끔찍한 상실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둠과 외로움, 주님을 향한 끊임없는 갈망이 마음 깊은 곳에서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어둠이 너무나 깊어서 제 마음으로도, 이성으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 영혼 안 주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20세기 가장 존경받는 위인이자 성녀로 추앙되는 마더 데레사(1910~1997)가 남긴 편지를 엮은 책이 1년 만에 번역·출간됐다. 1958년 이미 ‘빈민의 어머니’로 이름이 알려졌던 시기, 마더 데레사는 피카키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느님은 저를 원하지 않으십니다”라는 충격적인 고백을 이어간다. 테레사 수녀가 ‘침묵하는 신’ 앞에서 수십 년간 느꼈던 좌절과 절망, 고독과 슬픔을 담은 이 책은 성녀인 동시에 ‘인간의 얼굴’을 한 그를 드러내고 있다. 저자인 브라이언 신부는 데레사 수녀가 수없이 자주 언급하는 ‘어둠’에 대해 “심오한 내적 고통, 평온의 부재, 영적 메마름, 그녀의 삶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은 느낌과 동시에 하느님을 향한 고통스러운 갈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는 “가톨릭 신비주의 전통에서 내적 어둠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교회사를 통틀어 수많은 성인들이 흔히 겪은 현상”이라고 말한다.
◇다음 차원으로의 여행/클레멘스 쿠비 지음·송명희 옮김/376쪽·1만1000원·열음사
불의의 사고 이후 하반신 불구 선고를 받았던 독일의 다큐멘터리 감독 클레멘스 쿠비가 자신이 겪은 영성 체험을 글로 옮겼다.‘오래된 라다크’ ‘티베트의 저항’ ‘살아있는 부처’ 등 불교 삼부작으로 유명한 쿠비 감독은 15m 높이의 다락방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겪고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으나 ‘영혼과의 대화’에 집중해 마음의 평안을 찾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이후 그는 영혼이 지닌 무한한 능력과 자기 치유의 효과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쿠비는 이후 몇 년에 걸쳐 세계 곳곳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발견한 치료의 현장을 담은 영화 ‘다음 차원으로 가는 여행’을 찍었고 이 영화를 취재한 여정과 그 전후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우나의 정글/프레드 오티스 깁슨 지음·이시영 옮김/144쪽·9000원·문학동네
집으로 가는 길을 잃고 모험을 하게 된 우나라는 아이를 통해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열두 가지 철학 주제들을 판타지와 모험 형식을 빌려 하루 동안의 여행으로 풀어낸다. 석류 씨에 담긴 생명, 눈에 보이지 않아도 충분히 존재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저자 프레드 오티스 깁슨은 문학을 전공하고 정원사, 요리사, 화물차 짐꾼, 레스토랑 지배인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고. 우나의 정글은 깁슨의 첫 번째 동화책으로 멕시코나 카우아이 섬 같은 열대지방을 여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시켰다.
◇내 영혼의 그림 여행/정지원 지음/284쪽·1만3000원·한겨레출판
‘꽃보다 아름다워’로 유명한 시인 정지원 씨가 미술서를 냈다. 전문가의 시각이 아니라 일반적인 감상자의 시선으로 그림을 보고, 느끼고, 시인의 언어로 풀어낸다. 김호석의 그림 ‘어때, 시원하지!’를 보며 딸의 귀지를 파주는 엄마와 딸의 대화를 상상하고, 신윤복의 ‘월하정인’ 속 담장 아래 연인들의 가슴 터질 듯한 마음결을 들춰보고, 샤갈의 ‘푸른 서커스’ 속 서커스 하는 소녀에게 “기운내”라는 위로의 말을 던진다. 렘브란트와 모네, 르누아르, 고gm 등의 대가의 작품들도 시인의 눈에 의해 새롭게 읽힌다.
◇키스 더 베니스/유성혜 글·사진/288쪽·1만2000원·은행나무
이탈리아 베니스에 푹 빠져 그 곳에서 살게 된 저자가 베니스의 골목골목 깊숙한 곳을 다니며 발랄하게 풀어낸 여행서다. 젊음과 활력이 넘치는 도르소두로부터 사라진 웅장한 역사 위에 일상의 모습을 간직한 카스텔로, 사시사철 상인과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산폴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자 과거의 화려한 영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산 마르코, 베니스의 관문이자 첫인상이 되는 산타크로체 등이 펼쳐진다. 여행객들이 북적이는 산마르코 광장에서 아는 사람만 찾아올 수 있는 좁은 골목 안 작은 공방들,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유대인 거주지 게토, 바닷가 제방길까지 저자는 베니스의 곳곳을 밟아보고 그 곳의 비밀에 귀를 기울인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