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러운 내부에
우주선 연상시키는
곡선 가구의 하모니
현대 영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자하 하디드 씨와 18세기 후반의 영국을 대표했던 건축가 제임스 와이어트.
이라크 출신의 하디드 씨는 20세기 포스트 모더니즘을 주도하며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파크 설계자로 선정돼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오전 영국 런던 포트먼 광장 옆 ‘홈 하우스’ 인테리어 마무리 작업 현장에서는 200여 년을 건너 뛴 선후배 건축가들의 치열하지만 호의적인 ‘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디드 설계사무소 ‘스튜디오 9’의 책임디자이너 우디 야오(45) 씨는 “인테리어 구조물의 형태는 미래지향적이지만 그 색채나 배치는 이 건물이 세워질 무렵의 디자인 경향을 참고했다”며 “현재의 디자인이 과거를 무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갤러리로 쓰이던 오래된 건물 내부를 VIP 클럽으로 바꾸는 리노베이션은 특별한 콘셉트 없이 관습적으로 진행되기 쉽다. 하지만 하디드 씨는 인테리어 디자인에 선배에 대한 경의를 녹여냈다. 과거를 끌어와 미래로 이으려고 한 건축가의 배려는 이 공간이 흔한 고급 클럽과는 다른 의미를 갖게 했다.
158m² 면적에 나란히 놓인 리셉션과 휴게실, 바(bar)에는 각각 자주색과 녹색, 갈색의 유리섬유 구조물이 놓였다. 그 구조물을 둘러싼 벽체에는 와이어트의 18세기 디테일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디드 씨는 형태를 매개로 한 소통을 추구하는 건축가. 직선으로 구획된 심심한 공간에 생명력과 역동성을 주는 구조물들은 과거와 미래의 디자인에 대한 화제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든다.
야오 씨는 다시 올드 본드 거리의 ‘하우저&워드’ 갤러리로 기자를 안내했다. 그곳에는 영국 모더니즘 미술의 창시자로 불리는 조각가 헨리 무어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하디드 씨는 14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의 디스플레이 디자인을 맡았다.
정형을 거스르며 삶의 에너지를 표현한 무어의 조각 작품들은 하디드 씨의 건축물과 많이 닮았다. 갤러리 큐레이터는 100여 년 전 사망한 조각가 무어의 비공개 작품과 현대의 접점을 하디드 씨의 건축물에서 찾아 디자인을 의뢰했다.
추상적 형태의 청동과 대리석 조각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곡선형 디스플레이 구조물 위에 놓였다. 볼펜 드로잉 작품은 둥그렇게 건물 벽면 위에 둘러친 하얀색 직물 캔버스 위에 걸렸다. 이 갤러리에서 무어의 작품이 열매라면 하디드 씨의 디스플레이는 열매를 지지하는 든든한 나무둥치다.
런던=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