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철 시의 요체는 부조리에 있다. 우리가 그의 과격한 실험에서 눈을 못 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남철 시인만큼 세상의 부조리와 치열하게 싸우는 시인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20세기 시정신의 적자다.
쩡, 쩡, 쩡, 얼어붙은 강물 위에, 얼어붙은 눈물을 핥으며, 던진 돌이 강바닥에 닿지 못하고 내는 소리. 쩡, 쩡, 쩡, 시의 외연으로만 보면 강에 돌을 던지는 이유는 돌을 강바닥에 닿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계절은 강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돌은 얼음을 깨지 못하고 얼음의 표면에 튕겨 날아간다. 쩡, 쩡, 쩡, 소리를 내며. 그러나 시의 내연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돌을 강바닥에 닿지 못하게 하는 얼어붙은 계절(혹은, 사회적 상황)에 대한 분노와 동시에 쩡, 쩡, 쩡, 돌이 튕겨 나가는 소리는 애틋한 끌림을 야기한다.
현실을 불가능하게 하는 바로 그것에 대한 끌림. 쩡, 쩡, 쩡, 이것에 이끌리지 않고 시는 성립할 수 없다. 현실을 불가능하게 하는 원인을 찾아서 그것을 분석하고 제거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시의 일이 아니다. 자신이 던진 돌이 이 추운 계절이 다 지나서야 바닥에 닿을 것을 알면서도 계속되는 지금의 돌팔매질 속에서 이 시는 빛난다. 부질없는 삶이여 오라. 그대가 오든 말든 나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
함성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