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빨강머리 앤’의 과거가 궁금해

  • 입력 2008년 11월 8일 03시 01분


◇ 빨강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버지 윌슨 지음·나선숙 올김/464쪽·1만3000원·세종서적

“…오늘 밤 아저씨가 저를 데리러 오지 않으면 기찻길로 내려가, 저기 모퉁이에 보이는 커다란 산벚나무에 올라가 밤을 보낼 생각이었어요. 그랬더라도 조금도 무섭지 않았을 거예요. 하얀 꽃들이 활짝 피어 있는 산벚나무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잠을 자면 정말 멋질 것 같지 않나요?”

입양한 남자 아이를 데리러 매슈가 브라이트리버 역에 도착했을 때, 사내아이 대신 하얀 원피스를 입고 새빨간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땋은 주근깨투성이의 소녀가 인사를 건네 온다. 착오로 선발된 줄도 모르고 에이번리의 초록 지붕의 집으로 입양된다는 기쁨에 들떠 있는 이 고아 소녀의 이야기가 루시 M 몽고메리 원작의 ‘빨강머리 앤(원제 Anne of Green Gables)’이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앤은 풍부한 감수성과 엉뚱한 상상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아 왔다.

이 책은 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빨강머리 앤이 매슈의 집으로 입양되기 전까지 겪었을 법한 어린 시절을 원작을 토대로 재구성한 프리퀄(원작보다 앞선 내용을 다루는 속편)이다.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된 앤은 유모였던 토마스 부인의 집에서 자란다. 찬장 속에 비치는 자신을 ‘케이티 모리스’란 친구로 상상하고 대화를 나누는 설정이나 토마스 부인이 죽자 해먼드의 집으로 옮겨갔다 다시 고아원에 들어간다는 줄거리는 원작과 같다. 저자는 원작에 있는 앤 셜리의 과거를 기본으로 하고, 앤의 성격이나 태도에서 유추할 수 있는 과거사를 세심하게 풀어냈다.

주정뱅이 토마스나 토마스 부인은 결점이 많지만 천성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좋은 양육 환경을 제공하진 못하지만 앤의 남다른 면모를 이해하고 있다.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느라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가는 곳마다 자상하게 관심을 가져주는 일라이저, 핸더슨 선생님, 맥도걸 선생님, 해거티 양 등의 어른들도 등장한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들이 나름의 사랑으로 앤을 품어주었기에 앤은 고아원에 와서도 친구들과 마음을 트게 된다.

저자는 앤이 어린 소녀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도 꿋꿋이 이겨내며 명랑하고 밝은 천성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 주변의 따스한 손길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캐나다 정부와 ‘루시 몽고메리 협회’가 10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펭귄판 번역본 ‘빨강머리 앤’(세종서적), 몽고메리의 삶을 저자의 스크랩북을 통해 살펴보는 ‘빨강머리 앤 이미지북’(엘리자베스 롤린스 에펄리 엮음·세종서적)도 함께 나왔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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