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인간적이었던 진짜 선비들
“아아! 공의 죽음을 애도하다 보니 갑자기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 버렸소이다. 마치 짝을 잃은 외로운 새같이 육체와 그림자만이 서로 의지하는 처지가 되었소. 그것은 줄만 남은 거문고나 구멍 없는 퉁소 같아서 아무리 줄을 퉁기고 바람을 불어넣어 보아도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이제 모든 것이 끝나버렸소이다.”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슬픔이 애절히 드러난 이 제문의 작자는 송강 정철이다. 그를 슬프게 한 친구는 율곡 이이. 정철은 “벗은 본래 핏줄로 맺어진 사이도 아니거늘 어쩌면 이리도 슬프단 말이오?”라고 제문을 이어간다.
정철은 21세 때인 1556년 이이를 만났다. 이이는 차분하고 정철은 다혈질이었지만 두 사람은 30여 년간 우정을 나눴다. 적이 많은 정철이 공격당할 때마다 이이는 그의 바람막이가 됐다.
중앙여고의 국어 교사인 저자는 퇴계 이황, 남명 조식, 고산 윤선도,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조선 선비들이 남긴 편지, 한시, 시조, 제문과 관련 서적을 독파한 뒤 선비의 참모습은 그들의 인간관계에서 탄생했다고 생각했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아내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자상하게 배려한 이황, 친구를 만나려고 경상도 삼가현(지금의 경남 합천군 삼가면)에서 충청도 속리산까지 걸어갔던 조식, 유배 온 제주도에서 아내의 죽음에 통곡하다가 죽음을 무릅쓰고 바다를 건너온 제자 덕분에 추사체를 완성해낸 김정희 등 조선 선비의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유배객, 세상을 알다’(태학사)는 10년을 조선 최북단과 최남단을 오가며 억울한 귀양살이로 보낸 조선 선비 김려(1766∼1822)의 산문집. 김려는 서른두 살에 친구의 옥사에 연루돼 함경도로 유배를 갔다. 병든 아내가 낳은 막내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유배를 떠나는 애절한 심정이 드러난다. 투신자살을 기도하고 혹독한 추위에 울다가도 일출의 황홀경에 넋이 빠지는 선비의 진솔한 모습이 드러난다.
‘산문기행-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이가서)는 35곳의 산수를 유람한 선비 54명의 여행기를 모았다. 북한산, 백두산은 물론이고 중국의 명산을 모두 감상했다는 ‘어우야담’의 저자 유몽인은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그 웅장하고 걸출한 것이 우리나라 모든 것의 으뜸”이라고 말한다.
‘거문고줄 꽂아놓고’(돌베개)는 정몽주와 정도전, 이황과 이이, 이항복과 이덕형 등 옛 사람들의 우정을 그들이 서로 주고받은 편지와 시, 그림, 관련 일화로 풀어냈다. 고려의 신하로 남았던 정몽주와 조선 건국을 입안한 정도전이 서로 흠모했음을 보여주는 글 등 마음이 통한 선비들의 진심이 배어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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