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천재 화가 혜원 신윤복(1758∼?)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은 영화 ‘미인도’의 시사회장에서 만난 영화평론가 정지욱 씨의 말이다. 그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시사회장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근 문화 예술계에 불고 있는 신윤복 바람은 지난해 출간된 소설가 이정명 씨의 팩션 소설 ‘바람의 화원’에서 비롯됐다. ‘월하정인’ ‘미인도’를 남긴 신윤복이 여성이라는 파격적 상상도 신선했지만, 김홍도가 화려한 색채를 쓰지 않은 것은 색맹이었기 때문이라든지, 사도세자의 어진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 등 지적 추리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같은 인물과 소재를 다룬 영화 ‘미인도’는 신윤복이 여성이라는 모티브만 돋보일 뿐 소설 ‘바람의 화원’만큼 18세기 조선과 신윤복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풍부하게 확장하지는 못했다.
‘단오풍정’ ‘이부탐춘’ 등 신윤복의 명작을 영상으로 재현한 것은 감독 특유의 감각을 보여 줬으나 극의 전개는 상투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영화는 김홍도의 제자로 들어간 신윤복이 풍속화의 소재를 구하러 거울장이 강무와 동행하던 중 사랑에 빠지게 되고, 김홍도가 이를 방해하는 삼각관계를 다뤘다. 영화 중반부터 신윤복은 강무와 사랑하게 해달라며 눈물을 글썽일 뿐이고, 스승은 질투에 불타 이를 막다가 세 사람이 비운의 결말을 맞는다. 어디서 본 듯한 구성에 ‘신윤복’이라는 인물만 올려 태운 것 같다.
주연 김민선의 캐스팅도 아쉬움이 남는다. 동그랗고 큼직큼직한 이목구비를 지닌 김민선의 얼굴은 가느다란 선이 강조된 신윤복의 미인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에서 신윤복은 강무와 김홍도 등 두 남자를 사로잡는 매력적인 여인으로 설정되어 있으나, 고운 한복 저고리로 꾸민 주연의 모습은 그렇게 매력적이지만은 않다. 예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과도한 정사신은 상상을 방해하기도 했다. 신윤복과 강무의 베드신은 필요한 부분이라고 해도, 김홍도가 신윤복과 강제로 성관계를 맺는 장면은 실존했던 인물에 대해 지나치게 파격적인 해석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청나라에서 가져온 춘화집을 흉내 내는 기녀들의 동성애 재연 장면은 수위가 높지만, 작품의 흐름으로 볼 때 그만한 비중으로 다뤄야 했는지 의아하다.
전윤수 감독은 “신윤복이라는 인물을 통해 신윤복이 살았던 시대를 재현하는 것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는 ‘성’에 갇혀 당대의 많은 모습을 놓쳐버린 듯하다. 13일 개봉. 18세 이상.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