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삶 어우러진 집]<7>정재헌 경희대 교수의 용인 단독주택

  • 입력 2008년 11월 12일 03시 01분


《한적한 동네의 아늑한 단독주택을 찾는 사람들은 ‘보기 좋지만 살기 불편한’ 집의 함정에 주의해야 한다. 예쁘장한 앞뜰을 가진 그림 같은 집. 주택개발지구 설계지침에 따라 담장을 세울 수 없어 뜰을 향한 창문이 커튼으로 막혀 있기 일쑤다. “집 앞을 지나는 사람의 눈은 즐겁겠지만 프라이버시 때문에 창문을 가려야 하는 집주인은 괴롭겠죠. 단독주택의 매력은 내부와 연계된 외부 생활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개방과 폐쇄는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어야 해요.”》

담장을 닮은 대문… “닫힌듯 열린 공간”

정재헌(45)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는 경기 용인시 기흥구 중동 885-4 주택에 ‘담장을 닮은 대문’을 달아 개방과 폐쇄의 유연함을 확보했다.

집 전면에 6m 너비로 널찍하게 낸 개구부. 미닫이 나무대문 두 쪽이 앞뜰과 도로 사이에 놓였다. 묵직하지만 부드럽게 움직이는 이 문의 개폐에 따라 집 내부와 외부의 연결이 조절된다.

208m²의 용지에 건축면적은 124m². 지난해 11월 설계를 시작해 올 3월 착공하고 10월에 완성했다. 땅 매입비를 제외한 건축비는 3억6000만 원. 결혼 후 10여 년을 아파트에서 살아온 안승남(44) 윤명희(40) 씨 부부에게는 어린시절 추억을 되살린 꿈의 공간이다.

“7일 밤에 처음으로 잠을 잤습니다. 창문이 많아 춥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문제없더군요. 마당을 파 보고 뒷산에 올라가고 하느라 바빴던 두 아이는 자정께야 잠들었고요. 아침에 지붕 틈 사이로 하늘빛이 쏟아지는데… 뭉클하던데요.”(안 씨)

8일 오전 찾은 이 집의 외관은 동네의 다른 집에 비해 얼핏 심심해 보였다. 노출콘크리트와 삼나무로 마감한 입면. 묵직한 돌 붙임과 윤기 나는 벽돌로 멋을 낸 주변 건물들과 대조적으로 소박하다.

정 교수는 “동네의 배경처럼 보인다면 설계자 의도가 그럭저럭 잘 반영된 것”이라며 만족스러워했다. 뒷산을 가리지 않고 스며들어 낮게 앉은 집. 주변의 아우성을 받아내면서 동네 전체를 한결 차분하게 만드는 쉼표처럼 보인다.

대문을 열고 전면 도로로 마당을 틔워 내면 뒤편 동산 나무들까지 동네로 다가온다. 동쪽 담장을 따라간 마당 길 끝에 낸 여닫이문이 뒷산으로 열렸기 때문이다. 그 위에 놓인 콘크리트 사각 아치는 2층 테라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면서 통로를 강조하는 악센트다.

현관은 벽 속에 은근히 숨어 있다. 초인종을 누르면 벽이 열리는 느낌. 마당에서 올려다 본 2층 남측 외벽에는 삼목 바를 촘촘히 붙였다. 집 밖으로 드러난 매끄러운 나무 벽과 달리 안에서 본 집의 표정에는 아기자기한 재미를 준 것이다.

가구도 모두 정 교수의 작품이다. 공간의 라인과 품을 끝까지 정갈하게 받는 섬세한 디테일이 집안 곳곳에 가득하다.

“주택에서 중요한 건 작은 치수입니다. 일상을 담는 공간에서 감동을 느끼는 요소는 아주 사소한 부분에 있죠. 가구 모서리 마감이 섬세할수록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사할 때 마음 상하게 만드는 건 아주 사소한 결함이잖아요.”

대지의 모양 때문에 서측 외벽은 직각에서 살짝 기울어져 있다. 2층 서측 벽면 천장의 길쭉한 오렌지색 삼각형 장식은 공간의 이지러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흔적이다.

집을 나서기 전 주인의 화장실에 들어갔다. 외벽 발치에 난 작은 간유리 창으로 은은하게 빛이 들어온다. 보기 좋기 전에 살기 편한 집으로 만들기 위해 곳곳에 숨겨 놓은 재치 있는 배려 가운데 하나다.

용인=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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