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연기에 아쉬움… 신인땐 하루만에 쫓겨나기도”
1990년 영화 ‘젊은 날의 초상’을 찍을 때였다. 이문열 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의 주인공 역은 남자 배우라면 누구나 탐내던 역이었다. 막 데뷔한 나는 투신자살하는 운동권 학생 ‘하’라는 단역이었다.
조감독이 오더니 주연인 정보석 씨를 소개시켜 준다고 해서 인사를 하러 갔다. 첫 만남이었다. 그런데 그는 “신인이면서 영화, TV 드라마, 연극까지 너무 많은 것에 눈을 돌린다. 한 가지에만 전념하라”고 말하더니 가버렸다. 어찌나 자존심이 상하던지….
‘아트’의 재공연에 이어 12월 5일부터 연극 ‘클로져’로 연극무대에 서는 정보석(46) 씨를 인터뷰하자고 자청한 이유이기도 하다.
▽조재현=그때 그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어요. 물론 채찍질도 됐고요.
▽정보석=나도 신인 시절 궂은일을 겪어서 걱정이 됐어요. 당시는 방송사에 따라 배우들이 편 가름을 당하던 때인데, 배우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관계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고요. 먼저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라는 뜻이었으니 오해 푸세요.(웃음)
▽조=진작에 풀었죠. 하하. ‘젊은 날의 초상’은 드라마에도 출연하셨죠?
▽정=신인 시절 MBC 창사특집극 주연으로 캐스팅됐다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가 서투르다고 촬영 하루 만에 쫓겨났어요. 최불암 김혜자 황신혜 씨 등 유명 배우들이 같이 했는데 얼마나 민망했겠어요. 짐을 싸고는 갈 곳이 없어 터덜터덜 중앙극장에 가서 문 닫을 때까지 영화를 봤어요. 이제 배우를 못하는 건 아닌가 울기도 하고 고민도 하다가 담당 PD를 찾아가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부탁해서 단역으로 출연했어요.
▽조=연극 ‘아트’에 이어 ‘클로져’를 하시는데요.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요.
▽정=‘신돈’, ‘대조영’, ‘달콤한 인생’ 등 3, 4년간 쉼 없이 TV 드라마를 해왔어요. TV 드라마를 하며 계속 연기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서, 연극 무대에 서서 이것을 풀어 봐야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지금 그것들을 한꺼번에 푸는 거죠.
▽조=대학 강단에 선 지 10여 년 되셨는데, 배우 지망생인 학생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시나요?
▽정=저는 주로 듣고 보기만 해요. 학생들 불만도 많은데, 연기는 누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거든요. 연기는 자신의 인생 경험들을 끄집어내 캐릭터를 살리는 일인 것 같아요. 다양한 인생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조=저도 연기자는 누구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경력이 쌓이면서 연기 스타일을 정립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요즘 걱정이 됩니다.
▽정=저도 학생들 앞에서 절대로 연기를 보여주지 않아요. 행여나 그들에게 정석으로 받아들여질까 봐 우려돼서죠. 내 연기 스타일을 가르치는 건 아이들을 망치는 길이에요.
▽조=방송 대본이 괄호와 온갖 색깔로 가득한 걸로 유명하시잖아요. 사전에 대본 연구를 치밀하게 한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정=그 부분은 조금 바뀌었어요. 전엔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내가 준비한 만큼만 나오고 다른 사람들과 앙상블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전체의 흐름을 보며 내가 뭘 해야 하는지를 봐야 하는데, 거기 분석된 규격만 본 거죠. 동그라미, 괄호, 네모 등 온갖 도형이 가득했는데 내 연기의 한계를 짓는 것 같아서 안 하기로 했어요. 이제는 대본이 깨끗해요.(웃음)
12월 5일∼2월 8일, 서울 대학로 SM아트홀 2만5000∼3만5000원, 02-764-8760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정보석 씨는…
△1962년 5월 2일 전남 나주 출생
△중앙대 연극영화과 졸업
△영화 ‘젊은 날의 초상’ ‘개 같은 날의 오후’ ‘오! 수정’, 드라마 ‘사모곡’ ‘상도’ ‘신돈’ ‘달콤한 인생’, 연극 ‘아트’ 등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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