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빵에 감춰진 어두운 비밀
기호의 차이에 따라 맛이나 편리함에 대한 판단은 나뉘겠지만 패스트푸드가 그다지 건강에 유익하지 않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최근 전통음식을 선호하는 ‘참살이(웰빙)’ 바람도 이런 인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막상 패스트푸드가 왜 나쁜 음식인지를 지적하는 일은 쉽지 않다. ‘패스트푸드의 제국’은 바로 이 “참깨가 송송 박힌 두 개의 햄버거 빵 사이에 감춰져 있는” 진실을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미국 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 기자 출신. 수년간 관련 업계의 그림자를 추적해왔다. 이 책의 부제도 ‘모든 미국 음식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the all-American meal)’이다.
패스트푸드가 생성된 역사를 짚으며 출발한 책은 일단 이 음식들의 ‘공장식 제조과정’을 거론한다. 수천수만 패스트푸드 직영점에는 엇비슷한 형태의 주방이 들어서 있다. 여기서 일하는 세계 곳곳의 요리사들은 별다른 경력이 없어도 거의 똑같은 모양과 맛을 내는 햄버거를 만든다. 수십 혹은 수백 마리의 다른 가축에서 나온 고기가 섞인 ‘패티(patty)’를 비롯한 모든 재료가 본사에서 내려오며 조리법도 똑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 ‘똑같은’ 처리 과정이 이 음식들의 최대 약점을 드러내게 한다고 지적한다. 패스트푸드 유통 구조의 거대화와 집중화로 인해 허점 많은 열악한 작업환경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이 환경은 ‘병균을 퍼뜨리는 데 매우 효율적’이다. 1993년 미국에서 햄버거를 먹고 700여 명이 복통 증세를 보이다 4명이 숨진 ‘잭 인 더 박스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정부가 나서 조치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미국 농무부는 이런 문제에 효과적인 제재를 가할 권한이 없다. 이른바 패스트푸드업계와 농산물 회사, 정치권으로 이어지는 ‘커넥션’ 탓이다.
“(대형 농산물 회사들과 패스트푸드 회사들은) 소비에트 인민위원회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억누르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농산물 회사들이 지원한 ‘농산물 비방 금지에 관한 법안’은 13개 주에서 통과됐다. (…) ‘농산물 비방’이라는 개념 자체가 위헌 소지가 있지만 그와 상관없이 법률은 시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저자는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이런 측면을 인식하면서도 별다른 비판 없이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한다. ‘적절한 구매 거부와 소비자 운동’ 등 적극적인 의사 표시라는 무기를 포기하지 말라는 것.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패스트푸드업계에서) 가장 대항하기 어려운 힘이 될 때가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미국 이야기임에도 결코 남의 나라 얘기로 들리지 않는 외침이다. 원제 ‘Fast Food Nation’(2000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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