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동인으로 3년째 활동하고 있는 김한길, 우현종, 박정석, 김재엽, 김혜영 씨는 그들의 다섯 번째 동인전 ‘극장전’을 연다. 이들이 ‘혜화동 1번지’라는 타이틀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혜화동 1번지’는 활동한 후 4, 5년이 되면 다음 기수를 뽑아 ‘혜화동 1번지’의 타이틀과 소극장을 넘겨주기 때문.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이번 동인전 준비에 바쁜 4기 동인을 대학로에서 만났다. ‘혜화동 1번지’라는 타이틀은 이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어찌됐든 발탁된 것이니 자부심이 있죠. 유명한 선배들을 잇는다는 책임감도 있고… ‘혜화동 1번지’라는 이름이 대외적인 주목을 남보다 더 받는 부분도 좋은 점이죠.”(우현종)
“솔직히 족쇄가 될 때도 있어요. 실험극을 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죠. 남들은 실험극을 할 때 고민하지만, 저는 일반 상업극의 냄새가 날까봐 ‘이거 이래도 되나’하는 고민과 자기 검열을 하게 되요.”(김재엽)
‘혜화동 1번지’의 정체성은 실험극이다. 박근형 씨의 ‘청춘예찬’, 양정웅 씨의 ‘한여름밤의 꿈’처럼 독특한 시도를 하면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끈 수확물도 나왔다. 그러나 4기에 들어오며 예전 같은 실험적 시도를 찾기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있다.
“2기 선배들 때만 해도 대학에서 팸플릿을 돌리기만 해도 극장이 가득 찼다고 해요. 요즘은 어림없죠. 우리는 창작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다고 봐요. 이런 환경 속에서도 내가 끊임없이 창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정이 실험이라는 거죠.”(김재엽)
“말랑말랑한 코미디가 잘 되고 새로운 것이 주목받는 요즘 같은 때, 연극 사회와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복고적인 시도가 오히려 실험이 될 수도 있다고 봐요.”(박정석)
‘극장전’에서 이들이 올리는 작품은 ‘복고’를 담고 있다. ‘세월이 가면’(우현종)은 문화의 거리로 전성기를 누리던 1950년대 명동을, ‘과연, 누가 20대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김재엽)는 과거와 달리 동력을 잃은 20대의 모습을, ‘귀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한 가족의 굴곡진 삶을 담았다. ‘남도 1’(박정석)은 박상륭의 동명 소설을, ‘행복탕’(김혜영)은 점차 쇠퇴하고 있는 대중목욕탕이라는 소재를 쓴다.
이들은 극장 ‘연극 실험실 혜화동 1번지’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작품을 올리며 때로는 대관도 한다. 이들은 “100석의 객석이 ‘ㄴ’자로 무대를 감싸고 있는 10평 공간에서 무언가를 올리는 게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혜화동 1번지’ 극장에서 작품을 올리는 것은 엄청난 훈련이 돼요. 극장의 구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되죠. 얼마 전 올렸던 ‘별을 가두다’는 조명만으로 공간을 산길, 산장, 산장 밖 마당으로 나누기도 했어요.”(우현종)
“연출이면서 ‘혜화동 1번지’ 극장 운영자가 되고, 동인제를 통한 기획자가 되니 연극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갖는데 그것이 큰 자산인 것 같아요.”(김혜영)
12일∼1월 11일. 서울 혜화동 연극 실험실 혜화동 1번지. 02-3673-5580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