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택에 의하면 ‘인격’은 인간이 ‘악’과 결별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악’을 흔적 없이 녹여내면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 인격을 갖춘 자만이 “그 어떤 비난이 떼를 지어 할퀸다 할지라도” 삶을 견뎌낼 수 있다. 치열한 견딤의 시간은 ‘최후의 악’에 짓눌려 있던 ‘벌레’를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게 만든다. 물론 이 환생은 한 사람의 일생 안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사건을 말한다.
박주택은 ‘벌레’에서 다시 환생한 ‘인간’의 자리에, ‘바위, 뻐꾸기, 청청한 나무’ 등의 순결한 존재들을 가져다 놓는다. 어떤 상처와 모멸도 견딤으로써 인간은 ‘벌레’의 비루한 전생에서 벗어나 ‘바위, 뻐꾸기, 청청한 나무’ 등의 고결한 후생을 맞이할 수 있다. 이 전생과 후생의 연속이 바로 우리의 ‘현생’이며, 환생은 우리의 현실에서 일상적으로 (각자의 내면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상처가 깊을수록 정신은 빳빳한 법”임을 실감한 사람들은 날마다의 환생을 통해 ‘인격’을 만들어가는 박주택의 ‘지조론’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환생은 언제 일어나는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영영 죽을 목숨일 때” 일어난다. “영영 죽을 목숨일 때”가 바로 환생의 순간이며, 그것을 견뎌내는 것이 바로 ‘지조’이다.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