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고희에 낸 시집, 결산 아닌 출발이죠”

  • 입력 2008년 11월 15일 03시 00분


◇ 우리나라엔 풀밭이 많다/정진규 지음/140쪽·5만 원·시월

‘이제 너에게로 돌아가는 길은 위기로만 남아 있구나 골목길 들어서면 겨우 익숙한 저녁 냄새만 인색하게 나를 달랜다 이 또한 전 같지 않다 12월 때문에 11월은 가장 서둔다 끝나기 전에 끝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들통나고 있다’(‘11월을 빠져나가며’ 중에서)

그는 왕성했다. 올해 70세를 맞은 정진규(사진) 시인.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니 ‘문단 나이’로 지천명(知天命)에 다가섰지만 “젊을 때보다 시상(詩想)은 더 풍부해졌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때문인지 시인은 이 시선집을 ‘결산’이 아니라 ‘새 출발’이라고 불렀다.

“아직 ‘현대시학’ 주간으로 현역에서 뛰는 덕분인 것 같아요. 젊은 시인들과 얘기 나누는 게 즐겁다오. 그네들에겐 미안하지만 생기도 좀 나눠 받고. 미련이 잦아들 세월도 됐건만 시에 대한 욕심이 한층 커져갑니다. 보통 3, 4년 주기로 시집을 냈는데 ‘껍질’(2007년)이 나온 지 얼마 안 됐지만 내년 초 새 시집을 낼 계획입니다.”

고희를 정리한다는 뜻 말고도 이 시선집은 의미가 크다. 현대시 100주년을 맞아 1000부 한정판으로 제작된 것으로 이근배 김종해 시인에 이어 세 번째로 펴낸 전통 활판인쇄본. 시인은 “가벼운 세상에 시마저 무게를 잃고 있는데, 말 그대로 손끝으로 ‘묶으며’ 시의 본질을 돌아보는 고마운 기회였다”고 말했다.

▶2008년 6월 30일 A17면 참조
“납활자의 추억을 찍어냅니다”

이 시선집에는 그의 연작시 ‘몸시’ 가운데 13편도 실렸다. 그는 “시란 인간의 내면이 실체적 몸과 합쳐져 자연스레 언어로 이뤄진다는 뜻”이라며 “젊은 시인들이 실험의식이 앞서 억지로 시어를 만들다 감성을 상실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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