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몸을 경건히 하지 않으면 이는 제 부모를 다치게 하는 것이고, 제 부모를 다치게 하는 것은 제 근본을 다치게 하는 것이다.” 조선 학자 이이가 ‘성학집요’에서 쓴 구절이다. 이 말에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즉, “내 몸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며, 자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이라는 뜻”이라고 저자는 풀이했다. 조선시대에는 또 몸과 마음을 별개가 아니라 하나로 보는 ‘심신일원론(心身一元論)’적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몸과 마음이 유기적으로 융화해 일체를 이룬다는 생각이었다. 일체를 이루긴 하지만 동등한 지위는 아니었다. 몸은 정신 또는 마음보다 덜 중요했고, 하찮은 것이었으며, 마음으로부터 분리돼 독립적 가치를 가진 존재도 아니었다. 따라서 “깊이 사유하거나 주목할 대상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관념론 벗은 한국사회 ‘육체혁명’ 언제부터
그러던 몸에 대한 인식이 오늘날엔 크게 다르다. ‘얼짱’, ‘몸짱’의 기치 아래 성형수술이 대중화되고 다이어트 열풍과 건강 중독증까지 생겼다. 한국 사회에서 몸의 주인이 언제 ‘내 몸’을 찾았으며, 언제부터 육체가 그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았을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근대의 신소설 잡지 신문을 중심으로 당시의 ‘몸’ 이야기를 추적했다.
그는 우선 ‘우등한 것은 승리하고 열등한 것은 패배하는 것이 공례’라고 한 서양의 사회진화론이 개화기 조선에 전파된 사실에 주목했다. 사회진화론에 따르면 우등한 사회가 되기 위해선 사회 구성원이 우등한 인종들이어야 하며, 우등한 인종은 건강한 신체를 기본 조건으로 한다. 저자는 “이런 생각이 퍼지면서 몸이 중요해지기 시작했고 몸은 몸대로 존중할 가치를 지니게 됐다”고 말한다.
몸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개화기 학교 수업에 ‘체육’이 도입된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월간지 ‘태극학보’ 1908년 5월호에 ‘체육론’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은 몸과 마음에 대한 전통적 인식이 바뀌었음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몸에 대한 시각이 바뀌면서 개화기 소설에서도 ‘몸’이 이야기의 흐름에서 중요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이 삼십이 넘을락 말락 하고, 구레나룻은 뺨을 쳐도 아프지 아니할 만하고, 둥그런 눈은 심술이 뚝뚝 떨어지는 듯하고, 콧날 우뚝 서고 몸집 떡 벌어진 모양이 대체 영특한 남자이라.’(‘귀의성’에서)
몸 자체가 소설의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기도 한다. ‘혈의누’의 여주인공 옥련의 ‘부상당한 몸’이 대표적이다. 옥련은 청일전쟁 와중에 일본군의 탄환을 맞아 부상을 입는다. 옥련을 치료한 일본 의사는 ‘청인의 철환은 독한 약이 섞여 있지만 일인의 철환은 그렇지 않아 치료하기가 쉽다’고 말한다. 저자는 “옥련은 청과 일본 사이에 낀 나약한 조선을 의미하며, 일본 의사의 말에는 ‘일본군은 사람을 죽이는 군대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군대다’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고 풀이했다.
육체가 ‘탄생’을 알리고 독립적인 지위를 찾아가던 시절, 미(美)의 기준은 어떠했을까. 잡지 ‘별건곤’ 1928년 8월 10일자에 성서인이 쓴 ‘과학적 견지로 보는 세계 공통 미인 표준’을 보자.
“첫째, 키는 머리 전체 길이의 8배, 얼굴 길이의 10배. 둘째, 얼굴은 머리가 난 데서부터 눈썹까지, 눈썹에서 코 밑까지, 코 밑에서 아래턱까지 길이가 같음. 셋째, 안면은 손바닥과 길이가 같고, 넷째, 두 팔을 벌린 길이는 키와 같다.”
저자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생긴 변화들은 21세기의 ‘몸의 현실’과 많은 부분 닮았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