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하천 “친권논쟁,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라”

  • 입력 2008년 11월 17일 14시 41분


최근 여성계 일각에서 조성민 씨의 친권 주장에 제동을 걸고 있는 가운데 ‘나는 제사가 싫다’의 저자인 소설가 이하천 씨가 “일부 여성계에서 나오는 언어들을 보면서 너무도 큰일 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동아닷컴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그는 “지금 어른들이 가장 생각해야할 것은 최진실, 조성민 아이들의 마음의 평화”라며 “차분하고 냉정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주변 사람들이 조성민과 아이들이 불화를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성민이 고 최진실이 남긴 유산에 대해 ‘법원이 정해주는 사람’ 혹은 ‘객관적인 제3자의 관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라며 “양육권에 대해선 외가에서 갖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조성민은 그 부분에 대해서 엎드려서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친권은 조성민 정도의 아버지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외삼촌 최진영이 갖겠다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며 “최진영은 엉뚱하게 아버지 자리에 가서 서지 말고 외삼촌인 자신의 자리에 가서 서기를 바란다. 아이들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 억울한 마음이 들더라도 그 마음을 누를 수 있는 성숙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아닷컴과의 전화 통화에서 “최근 ‘한부모 가족을 걱정하는 진실모임’ 의 인터뷰를 보고 걱정스러웠다. 여성들의 집단 무의식적인 과거의 상처가 드러난 것 같다”며 “조성민이 못 미덥다고 하는데 최진영은 믿을 수 있나. 인간사가 그렇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도 횡포를 못 부리도록 관리체계를 마련하자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여성계가 할일이다. 그 아버지를 정신병자나 문제아로 만들어서 어쩌자는 것이냐”면서 “여성과 남성을 갈기갈기 찢는 쪽으로 간다면 문제다. 여성과 남성의 권력 싸움이 돼 버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하천 씨는 2000년 ‘나는 제사가 싫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문화비평서를 펴내 논란의 중심이 섰다. 그는 이후 2004년에 발표한 소설 ‘내가 증오한 사랑’에서도 가부장제를 꼬집은 바 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다음은 이 씨의 글 전문.

뒤틀린 모성과 우리사회의 인격감각
(최진실, 조성민의 아이들의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인격의학(medicine of persons)에서 나온 자료들을 보면,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여성과 남성에게 각각 다른 능력을 주셨다고 한다. 남성에게는 사물감각(sense of things) 능력을 주셨고 여성에게는 인격감각(sense of persons)능력을 주셨다.

여기서 사물감각이란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할 것이다. 대신 이 감각은 조화롭게 판단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여성에게 주어진 인격감각 능력이란 일의 능력은 조금 떨어질지 모르지만, 인간관계의 조화를 도모할 줄 아는 그런 능력을 말할 것이다. 말하자면 용서와 배려와 조화의 능력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높을 확률이 많다는 것이고 남성들은 이런 것에 흥미가 적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하늘이 내려준 이 본질적인 여성성의 성향이 가부장제라는 틀에서 역사적으로 너무도 억압을 당해왔기 때문에, 제대로 활짝 펴지를 못하고 왜곡되고 뒤틀려져서 발전을 해왔다.

나는 가부장제의 폐해가 너무도 크다는 판단에서 40대를 통째로 가부장제의 핵이 뭐냐를 추적해 들어가는데 보낸 경험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핵이 제사와 호적제도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래서 2000년도 그 당시 아무도 무서워서 못나서는 제사라는 핵을 그야말로 시퍼런 장칼로 내려치는 기분으로 쳐버렸었다. 도대체 자손을 이런 식으로 기르다니! 나는 정말 분노했었다. 남성과 여성이 다 윈윈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조상의 개념과 제사의 개념을 바꾸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인간의 심리를 너무도 무시한 죄의 대가를 받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고, 너도 울고 나도 울고 그 판이었다. ‘왜 울지? 불편하면 바꿔야 되는 것 아닌가?’로 시작했지만…….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다. 그토록 인간이 만든 제도란 인간의 뒤틀린 욕망의 권력과 맞물려 있었다. 그 합당하지 못한 권력을 내놓지 않기 위해 교묘하게 조상까지 파는 인간의 고도로 발달된 어두운 음흉함……. 정말 몸서리쳐지는 장면이었다.

이제 여성계의 치열한 노력으로 호주제폐지라는 억압의 기본 틀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금방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리라. 억압된 여성성 때문에 굴곡 되어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남성성과 겨우 그 틀에서 해방된 한 많은 여성성과의 화해를 위한 심리적 조절단계는 참으로 앞으로도 그 길이 멀고도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우리사회의 정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이 일을 앞으로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길은 바로 합리적인 언어를 찾아내면서 불합리적으로 축적된 언어를 자꾸만 물려 세우면서 우리사회의 심리가 부정적인 세계보다 긍정적인 세계를 향해서 자꾸만 걸어 나가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지금 어른들이 가장 생각해야할 것은 최진실, 조성민 아이들의 마음의 평화다.

그것을 위해서 어른들은 언어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제 1 원리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돈이 아니라 언어라고 보는 사람이다.

그런데 일부 여성계에서 나오는 언어들을 보면서 너무도 큰일 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가 너무 격렬하다는 것이다.

너무 비명소리가 요란하다.

왜 소리를 지르나?

과거라면 모르지만 지금은 역사적으로 그럴 단계도 아니다.

인간의 심리는 과거로 회귀하는 성향이 있지만, 끊어야 할 때는 과감히 끊어버리는 용기도 필요하다.

얼마든지 합리적으로 최진실 측과 조성민을 관리해서 아이들의 마음의 평화가 깨어지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이 사회에 축적이 되어 있는데, 과거로 마음들이 회귀를 하고 있으니 완전히 깨진 언어들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그 아이들이 지금은 모르지만, 언어란 너무도 신비해서 이 사회에서 투쟁하고 판결을 내리고 짜증내는 모든 깨어진 언어들이 결국은 주변사람들을 통해서 그 두 아이들의 심리 갈피갈피에 하나하나씩 쌓여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되기를 바란다면 이런 식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나간 과거를 들추어내면 양쪽 다 너무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하늘에 있는 어머니 최진실도 아이들의 마음의 평화를 생각한다면, 자신의 억울함이 있더라도 인수대비나 폐비윤씨나 외할머니(폐비윤씨 어머니)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말하자면 아버지를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뺏어버리기를 원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우리사회는 최진실에 대해 너무도 감성적으로 비극적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대단히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국민의 사랑을 그만큼 받은 사람으로서 자살이라는 극단의 방법으로 보답을 한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설득력이 없다.

최진실이 불쌍하고 누가 불쌍하고... 라는 식은 과거에 얽매어 아이들이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모란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막강한 파워를 가져서 그 부모와 화해를 하지 못하면서 잘 살아지는 게 아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버지와의 관계는 성인이 되어갈수록 더 화해가 필요하다. 차분하고 냉정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주변사람들이 조성민과 아이들이 불화를 일으키도록 만들지 말기를 바란다. 그 정도의 아버지를 갖는 것은 파괴보다는 건설 쪽으로 나가는 것이 아이들의 정신적 성장에 더 이익이 있지 않겠는가? 최진실도 진정한 모성을 가졌다면 그것을 원하지 않을까 싶다.

조성민이 고 최진실이 남긴 유산에 대해 ‘법원이 정해주는 사람’ 혹은 ‘객관적인 제3자의 관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조성민도 믿을 수 없듯이 외가도 믿을 수가 없다. 인간사가 그렇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조성민도 양육권과 여태껏 키워주신 외가에 대한 적절한 조치에 합의를 해야 한다고 본다. 양육권은 여러 정황상 외가에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외가에서 갖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조성민은 그 부분에 대해서 엎드려서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친권은 조성민 정도의 아버지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외삼촌 최진영이 갖겠다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최진영은 엉뚱하게 아버지 자리에 가서 서지 말고 외삼촌인 자신의 자리에 가서 서기를 바란다. 아이들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 억울한 마음이 들더라도 그 마음을 누를 수 있는 성숙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네티즌과 여성계에서 우려하는 조성민이 친권을 가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법적인 손질을 해서 조성민도 외가도 인간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으로 이 문제를 일단락 시켰으면 싶다. 말하자면 여성계에서 친권문제로 나섰으니 이런 부작용에 대해 일부 법을 손질하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여서 양쪽이 다 윈윈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면 고맙겠다.

나는 조성민과 최진실의 이혼과정을 지켜보았지만, 여자문제보다도 돈 문제로 최진실 조성민의 결혼이 파탄이 났다고 결론을 내렸었다. 그래서 또다시 돈 문제 때문에 아이들이 아버지와의 관계가 치명적인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막는 것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최진실 측이나 조성민은 어른들답게 아이들이 외가나 아버지 조성민 측이나 다 좋은 관계를 가지며 살도록 만들어내기를 바란다. 영국의 다이애나비 아들들처럼 말이다. 영국국민들도 다이애나비를 생각하면 너무도 억울했지만, 아이들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대단히 합리적으로 대처를 했다고 기억한다. 그러니 우리사회도 억울해도 아이들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다 윈윈이 될 수 있도록 그런 틀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게 바로 능력 아닌가? 그러려면 격렬한 언어나 비명소리는 적합지 않다는 것이다.

여성성이 미개발된 이런 사회에서는 마음의 평화를 깨는 것은 쉽지만 건설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그래서 너무 쉬운 쪽으로 발전을 하지 말고 성숙한 마음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를 가지라는 것이다. 조성민도 아이들이 마음의 평화를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돈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언어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싶다. 그리고 아이들과 외할머니와 외삼촌과의 관계를 위해서도 특별히 노력을 해주기를 부탁한다.

소설가 이하천 ‘나는 제사가 싫다’의 저자


▲ 영상취재 : 정주희 동아닷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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