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매니저와의 애증… 내 얘기 같아 울컥”

  • 입력 2008년 11월 20일 02시 47분


뮤지컬 ‘라디오 스타’ 주연 ‘왕년의 스타가수’ 김원준

올해 1월의 어느 날. 가수 김원준(35) 씨는 옛 매니저들에게 문득 전화를 걸었다. 한물간 록 스타와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키는 충실한 매니저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라디오 스타’를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어, 원준아. 지금 근무 중이야. 미안, 나중에 통화하자.”(매니저 A 씨)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B 씨)

“어, 웬일이냐. 난 요즘 무역일 하는데 잘 안되네. 옛 생각 많이 난다….”(C 씨)

하늘에선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8개월 뒤, 그는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재공연하는 이 뮤지컬의 주연을 맡았다. 그는 “1월에 라디오 스타를 봤을 때 가감 없이 내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었다”며 “다음 공연에서는 꼭 내가 그 역할을 맡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연을 앞두고 한창 연습 중인 그를 만났다.

○ 17일 오후 7시, 극장 용의 연습실

“이것 좀 드셔 보세요. 반찬이 예술이에요. 이렇게 대기실을 따로 주는 ‘VIP급’ 대접을 받은 건 5년 전 KBS ‘열린음악회’ 출연 이후 처음이에요. 하하.”

김 씨가 직접 밥을 퍼주며 기자에게 저녁을 권했다. 반찬은 두부조림, 오징어포, 김치.

대기실 모니터에는 무대에서 진행 중인 라디오 스타 리허설이 나오고 있었다. 주인공 최곤 역에 더블캐스팅 된 김도현(30) 씨가 매니저에게 악다구니를 부리는 장면. 지켜보던 김 씨가 말했다.

“한창 잘나갈 때 제 어깨엔 ‘뽕’이 한 100개 정도는 들어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그만큼 어깨에 힘주던 시절이었죠. 손가락만 까딱하면 모든 게 해결됐으니까요. 한마디로 ‘김원준 제국’이었죠.”

김 씨의 삶은 극중 최곤과도 많이 겹친다. 1992년 데뷔곡 ‘모두 잠든 후에’가 인기를 끌었고 이후 ‘너 없는 동안’ ‘쇼’ 등 5집까지 많은 히트곡을 냈다. 이 무렵 방송 3사의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며 높은 인기를 얻었으나 1998년 6집 실패 후 내리막길을 걸으며 대중에게서 잊혀져 갔다.

“일이 안 풀리면 다 매니저를 탓했어요. 6집 땐 매니저가 두 번 바뀌었죠. 주변 사람이 죄다 무능해 보였고 모든 걸 혼자 하려던 시절이었죠. 극중 대사처럼 홀로 빛나는 별은 없는데, 전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죠.”

○ 18일 오후 8시, 극장 용의 객석

‘라디오 스타’의 공연 첫날. 객석에 앉아 무대를 보는 김 씨의 얼굴은 밝으면서도 긴장돼 있었다. 오프닝 공연은 김도현 씨가 맡았다. 그는 담담히 “난 뮤지컬이 처음인데 첫 무대는 도현 씨가 맡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내 이름 누가 기억하나/내 노래 누가 불러주나/잊혀가겠지….”

무대에서는 최곤이 매니저와 다툰 후 강가에서 부르는 솔로곡 ‘내 노래 누가 불러주나’가 흘러나왔다. 노래가 끝나자 김 씨는 속삭였다. “제겐 이 장면이 참 잔인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느껴져요. 10년간 밤마다 수없이 저렇게 되뇌었어요. 매일 연습하는데도 저 장면에선 눈물을 참느라 힘들어요.”

극 후반부. 비 내리는 거리를 걷던 최곤 앞에 그를 떠난 매니저가 우산을 들고 돌아온다.

“모든 가수의 로망이죠. 현실에선 저렇게 희생적인 매니저가 없어요. 저도 친했던 매니저가 몇 명 있었는데 다 떠났습니다. 현실을 택한 건데 잡을 수도 없더라고요.”

마지막 장면. 무대에서 우산을 같이 쓴 두 사람 위로 빨간 저녁놀이 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그의 눈도 빨갛게 충혈됐다. 공연은 12월 31일까지. 1544-5955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


▲ 뮤지컬 ‘라디오스타’ 예고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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