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장들은 육성으로 온전하게 들린다. ‘이때 누군가 박 상궁의 입을 막는 자가 있으니’ ‘놀란 박 상궁 뒤돌아보니’는 희곡에만 쓰일 뿐 관객에게 말로 전달되지 않는 지문. 극단 ‘죽도록달린다’의 연극 ‘호야(好夜)’는 이런 통례를 무너뜨리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연출자 서재형 씨와 작가 한아름 씨 부부의 작품 ‘호야’는 지문과 해설을 배우가 직접 소화해낸다. “형식과 방법이 변해도 감동이 변하지 않는 연극의 기법은 무얼까 고민한 끝에 시도했다”는 게 서 씨의 설명이다.
조선의 어느 왕이 지배하는 시대. 아이가 없는 중전은 하루하루가 괴롭고. 대비와 그의 조카는 중전을 쫓아낼 궁리를 하고 있다.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중전의 오라비 한자겸과 왕의 여자인 귀인 어 씨가 서로를 연모해 온 것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부터. 두 사람의 금지된 사랑이 역모로 읽히면서 한자겸과 어 씨뿐 아니라 왕과 중전도 파탄으로 치닫는다.
“유생들의 눈이 좌우로 움직이며 왕의 동태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왕, 상소문을 집어 던진다”는 ‘친절한 지문 읽기’는 극 초반 관객들에게 번거롭게 들린다. 감정적으로 동화되기보다 극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도록 한다.
닭 우는 소리,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같은 음향 효과도 배우들이 직접 입으로 낼 때는 객석에서 웃음도 터진다.
지문 읽기에 익숙해진 중반을 넘어서자 이 실험은 작품에 대한 몰입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귀인 어 씨가 고문 중 실신을 한다”는 지문을 격렬하게 말한 뒤 어 씨가 쓰러지는 장면에선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사람이 정을 나누면서 산다는 것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은 낯설지만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건동 대학로극장. 1만5000∼3만 원. 1566-1369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