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mm 金線으로 ‘불경 그리기’ 집중 또 집중

  • 입력 2008년 11월 20일 02시 47분


‘사경변상도’ 재현 김경호 씨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유산 사경변상도(寫經變相圖). 사경은 불교 경전을 베껴 쓴 것이고 변상도는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감지(紺紙)와 같은 고급 색지에 금과 은 안료로 표현한 가늘디가는 선들이 일품이다.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쇠퇴한 고려 사경변상도의 전통을 700여 년 만에 재현한 사람이 있다. 한국사경연구회 회장인 김경호(47·사진) 씨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경내 불교중앙박물관은 개관 1주년을 기념해 12월 20일까지 ‘외길 김경호 선생 초청 사경 특별전’에서 그의 사경 작품 30여 점을 선보인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전시 중인 그의 작품 ‘화엄경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절첩본 1권의 보험액이 1억 원에 이를 정도로 작품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김 씨를 19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사경은 가장 어려운 수행이기도 합니다. 몸과 마음, 재료가 하나가 돼야 하죠. 온몸의 감각 기관이 잡념이 사라진 고요한 마음 상태와 호응할 때 붓과 안료가 자연스럽게 몸을 따릅니다.”

그의 작품에 표현된 수많은 선들은 1mm 안에 5∼10개가 들어갈 만큼 가늘다.

“붓털 2, 3개만으로 선을 표현합니다. 집중하면 한순간 티끌만 한 공간이 야구공처럼 커져 자신 있게 붓끝을 댈 수 있게 되죠.”

그는 티끌을 붓끝으로 정확히 찍은 상태로 몇 분 동안 떨림 없이 유지할 정도가 돼야 진정한 사경 작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최소 3개월, 최대 8개월이 걸린다. 안료로 쓸 금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 3번 이상 정제하고 사슴뿔에서 채취한 아교인 녹교를 금에 섞어 안료를 만드는 데만 하루가 걸린다. 감지에 손때가 묻어날까 1시간마다 손을 씻고 종이 위에 앉은 먼지도 수시로 닦아낸다. 금의 빛깔이 잘 드러나는 온도는 30∼35도. 한여름에도 히터를 켰다.

천천히 말을 이어 가는 그의 입 안을 보니 왼쪽 앞니 하나가 없다. 양쪽 어금니도 없었다.

“사경은 고도의 집중이 필요해 스트레스도 심한 작업입니다. 하루 10시간 이상 매달리다 보면 진이 빠집니다.”

작품 활동의 흐름이 끊기는 게 싫어 외출 등 다른 활동을 거의 하지 않다 보니 수년간 몸을 돌볼 겨를도 없었다는 것. 그렇게 해서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 중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국보 215호),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국보 235호)을 리메이크한 작품이 눈에 띈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재현으로 그치지 않는다. 고려 사경에 중국풍으로 표현된 등장인물을 한국적인 얼굴 표정으로 바꿨다. 보살처럼 표현된 사천왕도 본래의 위엄 있는 모습으로 다시 그렸고, 평면적인 기와와 파도 등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고려 사경을 능가하는 사경 제작이 오늘날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전통은 과거의 박제품이 아니라 현재에 숨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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