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필 리허설 지켜본 청소년들 “환상적인 경험”

  • 입력 2008년 11월 20일 17시 08분


"베를린 필을 찾아 온 여러분들을 만나게 돼 저도 무척 행복합니다. 리허설에서는 브람스 교향곡 1번과 2번 전체가 다 연주되지는 않는 걸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잘 감상해주세요."

20일 오전 10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사이먼 래틀 경은 리허설에 들어가기 앞서 마이크를 잡고 인사말을 건넸다. 베를린 필이 공식 연주에 앞서 리허설에 청소년 400명을 초청해 무료로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국내 공연에서 리허설을 개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콘서트홀 로비에는 이른 아침부터 청소년들로 붐볐다. 부산소년의집 오케스트라 단원 38명은 수녀님 두 분과 함께 새벽 4시에 관광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 걸려 예술의전당에 도착하기도 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4동 은천지역아동센터의 초등학생 9명을 인솔하고 온 교사 김미경 씨(38)는 "동아일보에 난 기사를 보고 바이올린과 기타연주, 합창 등으로 음악교육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전화했는데 초청을 받게 됐다"며 "아이들이 최근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봐서 그런지 클래식 음악도 친근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쿵쾅 쿵쾅 쿵쾅 쾅~'

힘찬 팀파니 리듬과 함께 브람스 교향곡 1번이 연주되자 학생들은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인 베를린 필의 강렬하고 웅장한 사운들에 흠뻑 빠져들었다. 래틀 경은 독일어와 영어를 섞어 가며 악장 야스나가 토루를 비롯해 단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입을 연신 벙긋거리고, 은발의 곱슬머리를 흔들며 지휘하는 래틀 경의 열정적인 지휘 동작에 몸을 함께 움직이는 학생들도 보였다.

성남청소년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송상규(12·용인 독정초등학교 5년) 군은 "현악기와 관악기가 한꺼번에 연주되면서 엄청나게 큰 소리가 터져 나오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며 "지휘자가 외국말로 해서 말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음악이 마음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이승혁(10·수원 소화초등학교 3학년)군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CD로 들으며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왔다"며 "음반으로만 듣던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의 리허설을 눈앞에서 보게 된 게 믿겨지지 않는다"며 감격해했다.

래틀 경은 빠른 악장은 중간 중간 끊어서 자주 지시를 내렸지만, 느린 악장의 경우 끊임없이 계속 연주해 베를린 필의 바다 같은 현악의 울림을 콘서트 때와 똑같이 느낄 수 있어 감동을 자아냈다. 특히 브람스 교향곡 1번 2악장에서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 엠마누엘 파후드(플루트), 벤첼 푹스(클라리넷), 슈테판도어(호른) 등 베를린 필의 스타 목관주자들의 따뜻한 음색의 솔로 연주가 울려 퍼지자 객석에선 탄성이 흘렀다.


▲전승훈, 신세기 기자

"플루트 소리가 너무 멋져서 기절할 뻔 했어요."(이수빈·서울 수서중 1년)

"지휘자의 손동작이 움직일 때마다 스타카토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하는 게 신기해요."(김범준·14·용인 수지중 1년)

부산소년의집 오케스트라의 악장 박해성(18) 군은 "우리는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할 때 초조하고 걱정된 표정들이 대부분인데, 베를린 필 단원들에게서는 여유와 위엄이 느껴졌다"며 "리허설을 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산소년의집 오케스트라는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아들 정민 씨가 지휘를 맡고 있다.

이날 학생들은 2시간 반 동안 중간에 자리를 뜨지 않고 리허설을 경청했다. 또한 피아니스트 백건우, 서울시향 악장 데니스 김, 클라리네티스트 계희정 씨 등 기성 연주자들도 리허설을 지켜봤다.

데니스 김 씨는 "리허설은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인 베를린 필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며 "공연을 앞두고 최종적으로 화음을 조율하느라 지휘자와 단원들이 극도의 집중을 해야하는 시간인데도 청소년들을 위해 리허설을 개방한 베를린 필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베를린 필의 오보에 수석 알브레히트 마이어는 "어린 학생들인데도 관람태도가 너무 좋아서 리허설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았다"며 "학생들에게는 평생 단 한 번밖에 없는 판타스틱한 추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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