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브람스’ 여운 가득… 베를린 필 내한공연

  • 입력 2008년 11월 21일 02시 57분


20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3년 만의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 공연에서 사이먼 래틀이 선택한 레퍼토리는 브람스의 교향곡 전곡(1∼4번)이었다.

한국의 음악 팬들을 고려해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게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의 관례임을 감안할 때 이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들이 들려주고자 하는 음악을 고집하는 모습은 신선하면서도 반가웠다.

더구나 한 작곡가의 교향곡 전곡을 집중 연주하는 일은 내한 공연 사상 매우 드문 일이다. 브람스 교향곡은 독일 교향악의 종가 베를린 필하모닉에 진정한 자존심과 같은 의미를 지녔지만, 래틀은 전임자인 카라얀과 아바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중하게 접근해 온 편이다. 2002년 음악감독에 취임한 뒤 6년이 지난 올해에 와서야 비로소 브람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는 래틀은 43세에 첫 교향곡을 발표한 브람스의 모습과 분명히 닮았다.

래틀의 브람스 전곡 연주로는 세계 초연이었던 이날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단히 여유로운 템포였다. 운명의 시계추를 연상시키는 교향곡 1번 1악장 서주의 팀파니 울림부터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공포스러운 느낌을 주지 않았다. 마치 관조적인 태도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듯했다. 매우 여유로운 템포로 각 주제들을 충분히 노래하는 까닭에 그 여운의 감동이 남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음악의 대가다운 탄력적인 리듬 감각은 여전했다. 걸음걸이는 여유롭지만 절도와 품위를 잃지 않는 신사를 연상케 하는 해석이었다.

브람스의 교향곡 1번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1악장과 4악장에 집중되기 마련이지만, 베를린 필 특유의 정교한 앙상블은 2악장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늦가을 하늘의 정취를 연상시키는 깊고 그윽한 현악의 양탄자 위에 형형색색의 단풍을 닮은 목관 앙상블의 아름다움은 이날 연주의 백미였다.

‘브람스의 전원교향곡’으로 불리는 2번 교향곡은 래틀이 가장 자주 연주하는 곡이라 더욱 자연스러웠다. 1, 2악장에서는 래틀의 여유로운 해석이 안개가 걷히고 태양이 떠오르는 전원의 느낌을 잘 살렸으며, 3악장에서 오보에 솔로로 시작되는 서정적인 목관 앙상블과 리드미컬한 현악 트리오의 극단적인 대비가 돋보였다. 브람스 음악 중에서 가장 찬란하고 환희에 찬 4악장 피날레 부분에서 래틀은 베를린 필이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 폭발력 있는 연주를 이뤄냈다.

자신만의 브람스 해석을 준비해 온 래틀의 예술적 고민과 궁극의 오케스트라 앙상블이 빚어낸 베를린 필하모닉의 첫날 공연은 마지막 음이 스러져 가는 순간의 공기까지도 연주의 일부임을 느끼게 해 준 명연이었다.

유정우 음악칼럼니스트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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