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바람뿐… "다윈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 입력 2008년 11월 21일 18시 53분


장보고호(위). 11월 3일 출항부터 함께 했던 강동균 대원이 서울로 떠나고 송동윤 대원이 합류했다. 왼쪽부터 권영인 박사, 강동균 대원, 송동윤 대원(아래)
장보고호(위). 11월 3일 출항부터 함께 했던 강동균 대원이 서울로 떠나고 송동윤 대원이 합류했다. 왼쪽부터 권영인 박사, 강동균 대원, 송동윤 대원(아래)
선상에서의 점심과 저녁은 주로 물만 부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군용 전투식량이다(위) 장보고호 내부(아래)
선상에서의 점심과 저녁은 주로 물만 부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군용 전투식량이다(위) 장보고호 내부(아래)
장보고호의 두남자, 의식주는 어떻게

권영인 박사와 새 탐사대원 송동윤 씨는 요즘 일주일이 넘게 항해하지 않고 배에서 머물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8일째 플로리다 주 웨스트 팜비치 항구에 정박해 있다. 미국에서 벗어나 중남미 바하마로 떠나는 긴 항해를 앞두고 날씨를 고르고 있는 것이다.

'장보고호'는 길이 10.5m. 폭 4.27m인 돛단배. 두 남자는 이 작은 공간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11월 21일 현재 출항 44일째 접어든 권 박사 팀의 '의식주'를 엿봤다.

▲ 의(衣)

바다라 그런지 일교차가 큰 편이다. 햇볕이 따스한 낮에는 반팔 반바지 차림. 그러나 미국 남쪽에 있어도 밤에는 꽤 추워서 긴팔 긴 바지에 두꺼운 점퍼를 입는다고 한다.

배 위에서는 물이 귀하다. 빨래? 세수? 샤워? 그건 '뭍'에서나 통하는 얘기다. 이번 항해에서는 속옷이나 겉옷이나 적어도 일주일 이상 쭉 입는다.

권 박사는 최근 합류한 새 탐사대원 송 씨를 보고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글쎄, 아침에 세수를 하더라고요. 난 언제 세수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권 박사의 요즘 사진을 보면 어느새 수염이 덥수룩해졌다.

▲ 식(食)

안부 인사가 '밥 먹었니'인 한국인들에게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하얀 쌀밥, 알맞게 익은 김치, 보글보글 된장찌개…. 이처럼 평범한 한식 메뉴도 권 박사팀에겐 그림의 떡이다.

아침은 스프나 분유, 비스킷. 가끔 땅콩버터와 스팸. 점심 저녁은 즉석비빔밥으로 때운다. 즉석 비빔밥은 물만 부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군용 전투식량이다. 권 박사는 전투식량인 즉석식품을 약 100일 분 챙겨 왔다. 즉석 된장찌개도 있다.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은 저녁에는 '특식'이 등장한다. 라면이다. 처음엔 바다 위에서 먹는 따뜻한 라면이 별미였는데 매일 똑같은 메뉴만 먹다보니 이제 지겹다.

권 박사는 처음엔 과일 대신 비타민제를 든든하게 챙겨왔다. 과일은 저장하기도 어렵고 깎아 먹기도 귀찮기 때문. 그러나 비타민제를 아무리 먹어도 입술이 부르트는 등 '과일 부족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과를 중간에 보급 받기도 했다. 요즘은 보관하기 편한 건조 과일을 듬뿍 사서 먹고 있다고. 고기 못 먹은 지는 오래됐다.

권 박사는 출항 후 몸무게가 약 4kg이나 빠졌다. 벨트 구멍을 몇 개 더 뚫었다고 한다.

▲ 주(住)

바다 위의 작은 배. 하루 일과는 오전 동틀 무렵 시작해 오후 9시경 잠이 드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도시에서의 생활과 정말 다르다. 도시에선 9시에 자는 걸 상상도 못하지만 이곳에서는 일출과 일몰에 의지해 생활하게 된다. 동트면 깨고, 어두워지면 자고. 밤늦게 깨어있어도 마땅히 할일이 없다.

지금은 물품 보급 문제로 웨스트 팜비치 항구에 정박해 있지만 그동안은 밤에 항구 근처 바다에 닻을 내리고 말 그대로 '떠' 있었다. 항구에 정박하면 사용료를 내야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국 돈으로 8~10만 원이나 한다. 400일을 넘는 일정, 무조건 돈은 아낄 수 있는 한 아껴야 한다.

바다 위에 둥둥 떠서 눈을 감으면 생각보다 잠자기가 어렵다. 흔들거려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고 한다.

김현수기자 kimhs@donga.com


▲동아일보 영상뉴스팀 이성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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