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황성희 시인 등단 3년 만에 첫 시집

  • 입력 2008년 11월 22일 02시 59분


“이상한 나라에 온 느낌 많아 환상의 문제, 고민 많이했어요”

내가 나인 것도 모른 채 그저 살다 보니 살게 되는 세상. 때로는 현실이 꿈보다 기이할 때가 있다. 등단한 지 3년 된 황성희(36·사진) 시인이 현실세계의 기형성과 뒤틀림을 날카로운 언어로 짚어낸 첫 시집 ‘앨리스네 집’(믿음사)을 펴냈다.

시모임 ‘21세기전망’ 동인이자 계간 실천문학 가을호 특집 ‘첫 시집이 기대되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혔던 그는 “이상한 나라에 와 있는 느낌을 자주 갖는다. 세상이 어느 순간 변하게 됐고 굳건하다고 믿었던 표식들이 흔들리게 됐다”며 “환상의 문제에 대해 오래 고민했기에 그런 문제의식이 첫 시집에 드러난 것 같다”고 말했다.

시인은 일상의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고 환상의 경계로 밀어 넣는다. 가족, 집, 삶의 행위들이 꿈처럼 기이하거나 몽환적인 것들로 변주된다. 아파트 관리실에서 시간과 존재를 논하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는가 하면(‘신격문’) 가족들의 관계는 그로테스크하다(‘거짓말’). 시대변화가 초래한 가치의 혼재와 그로 인한 멀미도 엿보인다.

‘영희. 죽었어. 90년에. 불에 타 죽었어. 전화 왔었어. 며칠 전. 민주 광장에서.…사실은 나 옛날에 죽은 영희를 몰라. 50년부터 아는 척해왔어…영희를 안다고 하는 게 유행이었어. 알잖아. 아무나 교과서에 실리는 건 아니야.’(‘나와 영희와 옛날이야기의 작가’)

이 가운데 익명성에 함몰됐던 개인과 세상의 대세에 밀려났던 존재들이 살아나기도 한다.

‘모 목장에서 양B로 오인 받아 도살당하는 양A/…/굶주린 늑대가 얼룩말 떼를 습격할 때/같은 무리 발에 걸려 넘어지는 얼룩말/집었던 콜라를 놓고 우유를 살 때 그 콜라.’(‘개나리들의 장래희망’)

“(독자들에게) ‘웃고 있지만 웃을 상황이 아닐 텐데?’ 하고 경고하는 시집”이라는 시인의 말처럼 기괴하고 낯선 언어 속에서도 기지와 위트가 살아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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