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귀 즐거운 ‘여균동표 사극영화’

  • 입력 2008년 11월 25일 02시 52분


■ 내달 개봉 ‘1724 기방난동사건’

12월 4일 개봉하는 ‘1724 기방난동사건’(15세 이상 관람가)은 흥겨운 마당놀이 한판 같은 영화다.

노론 대 소론의 다툼이 한창이던 조선 경종 말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진지한 의미는 없다.

한양 기방 명월향에 나타난 기생 설지(김옥빈). 저잣거리에서 돈내기 싸움질을 일삼던 한량 천둥(이정재)이 첫눈에 그녀에게 반한다. 천둥은 양주파 두목 짝귀(여균동)를 혼수상태로 만든 책임을 지고 임시 두목을 맡아 명월향 주인 만득(김석훈)과 대결한다.

진지함과 경박함을 넘나드는 이정재의 연기가 돋보인다. 처음 악역을 맡은 김석훈, 작품보다 TV 프로그램에서 노출 논란으로 알려졌던 김옥빈의 모습도 안정적인 편. 여균동 감독 특유의 연기 특별훈련 덕분이다.

연극판에서 경력을 쌓은 여 감독은 촬영 전 몇 달간 배우를 모아 놓고 연극 리허설처럼 연기 연습을 시킨다. 대신 촬영 현장에서는 배우의 연기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한 번도 지각하지 않은 이정재에게 감탄했다”며 “배우들과 의논해 수정한 시나리오 분량이 전체의 30%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웅의 탄생, 비상, 추락, 복수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익숙하다. 하지만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요소가 많아 ‘뻔한 영화’가 되지 않았다.

초점거리가 짧은 10mm 렌즈로 찍은 초반 화면은 인물의 모습을 왜곡시키고 동작을 과장해 관객의 흥미를 유발한다. 거의 모든 장면에 들어간 컴퓨터그래픽(CG)은 ‘화산고’(2001년)의 음침한 느낌과 유사하지만 더 자연스럽다. 짧게 끊어 속도감을 살린 편집과 그에 어우러진 신대철의 음악이 경쾌하다.

그런데 다음 장면들. 보기엔 그럴 듯한데 어디선가 본 듯하다. 비슷한 분위기의 특수효과를 쓰다 보면 장면이나 캐릭터가 흡사해질 수 있다. 비교해 볼 만한 외화 장면들을 나란히 소개한다.

#1 칼잡이 보스 만득과 ‘킬 빌’의 루시 루

만득이는 예쁘다. 붉은색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손톱에는 길쭉한 액세서리를 붙였다. 가늘게 뜬 눈을 내리깔고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칼을 귀 뒤로 살짝 넘기는 모습이 요염하다. 독특한 캐릭터 같지만 △건달 회합에서 맘에 안 드는 한 명을 갑자기 공격해 묵사발로 만드는 장면 △출신 성분 콤플렉스를 잔인한 행위로 극복하는 특징 등이 누군가를 계속 연상시킨다. 서슬 푸른 장도를 천천히 뽑아드는 장면에서 답이 나왔다. ‘킬 빌’ 1부(2003년)의 루시 루다.

#2 ‘콘스탄틴’과 동일 장소에서 찍은 듯한 최후 결전

미국 DC코믹스 만화가 원작인 ‘콘스탄틴’(2005년)에는 퇴마사 키아누 리브스가 사건 해결을 위해 지옥으로 가는 장면이 있다. ‘엑스맨’ 특수효과를 맡았던 마이클 핑크는 사물의 표면이 약간의 충격에도 먼지처럼 바람 속에 흩어지는 세상을 만들었다. 천둥과 만득의 마지막 결전. 첫 펀치를 주고받자 하늘이 어두운 갈색으로 물든다. 두 사람의 피부와 옷가지가 부스러져 거센 바람에 날린다. ‘콘스탄틴’의 지옥도를 잠깐 빌린 듯하다.

#3 ‘연인’의 대나무 숲에서 조우하는 남녀

영화 중반 천둥과 설지는 대나무 숲에서 숨겨뒀던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다. 마주 선 채 정에 겨워 벅차게 끌어안는 가슴 찡한 장면. 그런데 상황과 배경이 장이머우 감독의 ‘연인’(2004년)에서 진청우와 장쯔이가 연출하는 장면을 빼닮았다. 설마 ‘연인’에서처럼 적들이 쫓아와서 두 사람이 위기에 빠지겠어 하는 찰나, 자객들의 칼날이 덮쳐온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버선발에 먹물 묻혀 걸으니 용의 형상이 ‘꿈틀’▼

“좋은 자리에 여흥이 없다”며 버선발을 먹물 대야에 살짝 담그는 설지. 마루에 펼친 커다란 종이 위를 사뿐히 밟은 흔적이 모이더니 꿈틀거리는 용의 형상을 서서히 드러낸다. 김옥빈은 이 장면을 위해 한 달간 전통 무용인 ‘교방무’를 배웠다. ‘다세포 소녀’(2006년)의 ‘흔들녀’ 춤만큼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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