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잃은 ‘순정만화’

  • 입력 2008년 11월 25일 02시 52분


‘순정만화’의 캐릭터와 등장인물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연우(유지태) 수영(이연희) 강숙(강인) 하경(채정안). 사진 제공 비단
‘순정만화’의 캐릭터와 등장인물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연우(유지태) 수영(이연희) 강숙(강인) 하경(채정안). 사진 제공 비단
원작만화의 애틋한 사연, 배우들 외모에 가려

20일 오후 서울 종로의 한 영화관에서 열린 ‘순정만화’(27일 개봉·12세 이상 관람가) 시사회. 상영 전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홍보담당자는 “앞서 영화화된 작품들이 흥행에 실패해 풀 죽어 있을 강풀 작가를 응원하는 뜻에서 소문 좀 많이 내달라”고 말했다.

순정만화는 강풀의 인터넷 연재만화를 원작으로 한 3번째 영화다. 2006년 ‘아파트’와 2008년 ‘바보’보다 늦게 만들어졌지만 원작 만화는 강풀의 2004년 장편 데뷔 화제작이다. 인터넷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데도 만화책이 20만 부 넘게 팔렸다.

동사무소 직원 연우(유지태)와 고등학생 수영(이연희), 공익근무요원 강숙(강인)과 하경(채정안)의 잔잔한 사랑 얘기. 하지만 등장인물의 이름만 빌린 듯, 영화는 원작과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 간다.

원작에서 띠동갑인 연우와 수영은 서로의 외로움과 마음속 상처를 알게 되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조실부모한 연우와 재혼 가정의 막내 수영. 만화는 그들을 중심으로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모두의 갈등과 상처를 폭넓게 어루만졌다.

영화는 주인공 네 사람의 만남에만 관심이 있다. 연우와 수영은 별 이유나 사연 없이 그냥 서로를 좋아하게 된다. 하경의 옛 연인 ‘목도리 장수’가 죽은 것으로 설정되면서 그와 짝을 이뤘던 ‘붕어빵 아주머니’도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다. 지난 사랑을 못 잊는 하경의 사연도 단순화됐다.

사랑을 소재로 한 ‘사람 얘기’가 사라진 것이다. 옛사랑을 닫으면서 어렵게 새 사랑을 여는 사람들의 애틋한 사연은 화면에서 뽀얗게 처리된 선남선녀 배우들의 외모에 가려졌다. 주요 소재가 하늘색 목도리에서 우산으로 대체되면서 이야기의 훈훈함도 증발한 느낌이다.

원작에 없는 여고생 다정(‘소녀시대’의 수영)이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 것도 영화가 지향하는 바를 보여 준다.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주연 유지태는 “연기관이 다른 스타 지향적 배우들과 함께 촬영하는 게 쉽지 않았다. 흥행이 안 돼도 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동아닷컴 온라인 취재팀


▲윤준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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