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에 울고 “딩동댕”에 웃고
찬바람이 매섭게 불던 21일 오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 대운동장. 가설무대 위에서 한 건장한 남자 대학생이 반바지에 민소매 티를 입은 채 팥빙수를 급히 먹고 있다. KBS2 ‘로드쇼 퀴즈 원정대’(매주 일 오전 10시 45분)에 출연한 대학생이 ‘추위의 달인 동상 김병만 선생’을 자칭하며 장기를 선보인 것. 장기자랑에서 김종국 왕비호 등 연예인 심사위원에게 ‘딩동댕’을 받으면 OX 퀴즈를 거쳐 상금 1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자취방에 쌀이 떨어졌어요.”(김학현 씨·신문방송학과) “보일러가 고장 나 이불 뒤집어쓰고 자요.”(김혜교 씨·연극 동아리 ‘영죽무대’) “부모님 여행 보내드리려고요.”(심석 씨·공공정책학부) “환율 때문에 유학 경비가 부족해요.”(박영원 씨·성악과)
녹화 전 17개 팀 40여 명의 중앙대 학생들이 임시 천막 안에 모여 진지한 표정으로 상금을 쓰고 싶은 곳을 말했다. 불경기의 영향인지 절실한 사연들이 많다. “등록금이 다른 단과대보다 싼 편이지만 350만 원이 넘는다”는 송오영(경영학부 3학년) 씨는 “내년에 대학 부동산학과에 입학하시는 어머니와 올해 수능을 친 동생까지 대학생이 3명이나 된다”며 “꼭 상금을 타 등록금에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
“선배님, 붙었습니다!”
대기실 천막 안에서 ROTC 김송학(심리학과) 씨가 문자메시지를 받고 기쁜 소식을 알린다. 한 광고회사가 운영하는 ‘예비 광고인 교육생’ 과정 합격 통지가 온 것. 경쟁률이 높았던 터라 ‘후레시맨’ 복장을 하고 함께 출연한 ROTC 3명이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
“땡∼.”
ROTC들이 ‘원더걸스’의 ‘노바디’ 음악에 맞춰 춤을 추자 심사위원 ‘브라운아이드걸스’가 불합격 판정을 내린다. 녹화 다음 날인 22일이 임관 필기시험이라는 김경빈(연극영화학과) 씨는 순발력 있게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어느 별에서 왔니’를 불러 다시 ‘딩동댕’을 받아냈다.
파라과이 교포 2세로 군 입대를 피할 수 있었으나 장교로 자원입대하는 길을 택했다는 김경빈 씨는 입학 후 찹쌀떡 떡볶이 장사, 청바지 노점상을 하며 학비를 버느라 1년 동안 휴학을 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브라질에 계신 부모님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없다”며 퀴즈 녹화 시 ROTC 정복 착용을 고집했지만 퀴즈에서 탈락해 부모님께 선물을 보내드리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 프로그램의 MC는 1998년 인하대 재학 중 ‘퀴즈 원정대’와 비슷한 성격의 대학생 장기 자랑 코너였던 KBS ‘수퍼 선데이’의 ‘캠퍼스 영상가요’에 출연해 코믹 차력으로 우승했던 이혁재다. 이혁재는 “그때 받은 상금으로 다음 학기 등록금을 냈던 나는 100만 원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다”며 “세상이 어려워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학의 분위기는 활기차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날 퀴즈를 4연속 맞혀 100만 원을 받은 학생은 1명이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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