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 “예능은 또 다른 삶… 노래는 노래로 봐줬으면”

  • 입력 2008년 11월 25일 02시 52분


“발라드는 내 전공인데 음악만큼은 시류를 타지 않았으면 해요.” 3년 반 만에 11집 ‘동네 한 바퀴’를 낸 가수 윤종신. 사진 제공 뮤직도피오
“발라드는 내 전공인데 음악만큼은 시류를 타지 않았으면 해요.” 3년 반 만에 11집 ‘동네 한 바퀴’를 낸 가수 윤종신. 사진 제공 뮤직도피오
3년 반 만에 11집 낸 윤종신

가수 윤종신(39)의 오랜 팬들에게 수년전부터 굳혀진 '예능인 윤종신'은 외면하고 싶지만 인정해야하는 현실일 것이다. 그런 이들을 달래듯 그가 3년 반 만에 들고 나온 건 11집 '동네 한 바퀴'. 오랜 음악 친구인 '015B'의 정석원과 반씩 작업했다는 이 음반에는 '내일 할 일' '같이 가줄래' '야경' 등 익숙하고 서정성 짙은 윤종신 표 발라드곡이 담겼다.

14일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앉은 자리에서 이온음료 3잔을 들이켰다. 전날 10시간의 녹화를 마치고 병원을 들렸다 온 그는 "몸이 거덜 났다"고 했다. 예능인이자 뮤지션으로 살아가는 그가 처한 딜레마 세 가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가요계 '음유시인' vs '예능 늦둥이'

-예능인의 이미지가 너무 굳어져버렸어요.

"라디오에서 들려주던 입담을 TV로 옮겨 보여줬을 뿐이에요. 그런데 절 적대국으로 망명한 사람처럼 보시는 분들이 계세요. 자기가 알고 있던 이미지에 대한 배반감이라고 할까.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게 동네에 치킨 집 낸 거 하고 뭐가 다른가요?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면 뒷말도 무성할 것 같아요.

"요즘 인생의 모토는 '그럴 수도 있지'거든요. 댓글 보고 거기에 공감도 잘 하는 편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분유 값 벌려고 저런다고 하지만 그런 분께 드리고 싶은 말은 예능 프로그램이 분유값 벌려고 오는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만큼 머릿속에는 고도의 회로도가 돌아가는 치열한 곳이에요. 유재석 강호동 씨를 보면 웃기다고만 생각했는데 요즘은 괴물 같아요.(웃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걸 후회한 적은 없나요.

"한번도 없어요. 잃은 게 있다면 순수하게 제 노래를 좋아했던 팬들이 떠나간 것? 그런데요 이 정도 오래 활동하다보면 떠날 사람들은 다 떠났을 걸요."

-앞으로 예능을 계속 할 생각인 가요.

"2001년 첫 시트콤(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출연했을 땐 나를 재밌어 하는 모습에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그만큼 제겐 신천지 같았거든요. 전 그저 재밌기 때문에 하는 것일 뿐이고 지금은 열심히 이 곳 일을 배우는 중이에요."

●이별노래 전문 vs 라익이 아빠

-타이틀곡 '내일 할 일'은 이별을 준비하는 심정을 담은 노래인데요. 결혼과 득남 후 이별 가사를 쓰는 게 힘들진 않았나요.

"'이별 직후 검색해보면'이라는 가사를 쓰던 중 열어놓은 작업실 문을 보았어요. 아내와 아들이 놀고 있더군요. 진도를 나가야 하는데 도저히 안돼서 집을 나갔어요. 2주간동안 혼자 사는 후배 집에서 작업했죠. 예전엔 주린 배를 틀며 처절하게 가사를 쓰곤 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작업 중에 장모님이 '윤 서방 밥 먹어' 그러세요. 작업환경이 달라진 것뿐이고 생각해요."

-그러면 앨범 속 이별 가사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썼나요.

"결혼한 아내를 두고 옛 여인을 떠올린다는 건 미안한 일이에요. 하지만 아내는 제가 전에 사귀었던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예전 기억을 떠올리는 것까진 암묵적으로 인정해요."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잘 안됐어요. 하다보니 돼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낮에 사귀던 애인이랑 헤어지고 집에 왔더니 '유머 1번지'가 해서 막 웃는 것 같은. 녹화하는 동안 웃고 독설하고 깐죽대며 떠들지만 '컷' 하는 순간 그 모드는 끝나요. 이미 차에 타는 순간부터 저는 하루 일을 모두 마친, 일반인 윤종신 혹은 한 가정의 가장일 뿐이에요."

●오래전 그날 vs 팥빙수

-'오래전 그날' '너의 결혼식' '부디'보다 '팥빙수' 같은 가볍고 웃긴 노래가 더 쉽게 기억되는 것 같아요.

"다들 그랬어요. '팥빙수'처럼 빠른 곡으로 싱글을 내면 대박날 거라고. 그런데 저는 싫었어요. 난 발라드 전공인데… 내 노래만큼은 시류를 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슬픈 노래를 부르는데 사람들이 '깐죽이' 캐릭터를 떠올리면 어떡하죠.

"반항심리가 아니고 한번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웃긴 사람은 슬픈 노래 부르면 안 될까, 노래만으로 감정이입 하게 만들 순 없을까, 혹시 윤종신의 웃긴 캐릭터가 떠올라도 이 노래 하나로 몰입을 시키게 할 순 없을까. 그게 안 된다면 제 업보겠죠.(웃음)"

염희진 기자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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