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 이상우 행복한 아침편지] 시골에서 시작한 새 인생

  • 입력 2008년 11월 26일 11시 11분


최근 1∼2년 사이 참 숨 가쁘고 버거웠던 일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와 남편은 큰 도시에서 건설과 관련된 작은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년부터 원자재 값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자금 사정이 좋지 않게 돌아갔습니다.

매달 부족한 돈을 충당하기 위해 친정으로, 친구 집으로 동동거리며 쫓아다녀야 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일상처럼 반복되자, 남편이 원망스러워졌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쫓기듯 살아가야 하는지, 왜 이렇게 내 삶은 황폐하기만 한지 모든 게 남편 탓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올해 초에 원자재 값이 1년 새에 50%나 폭등을 하자 도저히 사업을 계속 꾸려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살고 있던 집마저 인부들의 임금과 빚 갚기 위해 모두 팔아버렸습니다. 오갈 데도 없이 작은 여관방에 몸을 맡기게 됐습니다.

좁디좁은 여관방에서 애들은 ‘엄마 이제 어떻게 해?’ 하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남편은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습니다.

저는 등 돌리고 누워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남편이 그랬습니다. “여보! 우리 시골 내려가자. 시골에서 농사짓는 내 친구한테 모든 사정을 털어놨더니, 그 친구가 그러더라. 그냥 모든 거 다 잊어버리고, 두 눈 딱 감고, 시골로 내려오라고… 그러면 좋은 땅 임대해서 농사지을 수 있게 소개해 주고, 자기가 도울 수 있는 건 다 도와주겠데”

그렇게 말하는 남편을 보자 빛 한 줄기가 가슴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남편의 의견에 수긍하면서도 “그런데 농사일? 당신 그거 할 수 있겠어? 아무리 친구가 도와준다고 해도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했더니,

“나, 이래 뵈도 농사짓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놈이야. 어릴 때 학교 갔다 오면 항상 부모님이 농사일 시키셔서, 대충 옆에서만 봐도 어떻게 하는 지 금방 배워. 내가 일 해 놓으면 우리 부모님이, 잘했다고 칭찬도 많이 해주셨어” 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남편의 얼굴이 한결 밝아져있었습니다.

그렇게 저희 네 식구는 올해 초에, ‘전북 완주군’의 한 작은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야트막한 산자락에 있던 낡은 집을 고쳐서 네 식구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먼 산에 춘설이 녹기 시작할 때 파종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떨어져 외딴 시골로 온다고 불만이 많았지만, 핑크공주인 작은 아이에게 요정이 그려진 핑크빛 벽지로 방을 꾸며주고, 항상 천식으로 고생을 하는 큰 아이에겐 옛 정취가 묻어나는 한지를 발라 방을 꾸며줬습니다.

그랬더니 애들도 금방 좋아하며 시골생활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저희 부부는 어렵고 힘든 일은 남편 친구에게 물어가며 도시생활의 때를 벗고, 완전히 농사꾼이 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유난히 덥던 올 여름엔, 뜨거운 태양 볕 아래 온 몸 태워가며 잡초를 뽑고, 약을 쳤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농사일에만 전념할 수 있으니 그게 그렇게 맘 편하고 좋았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대청마루에 누워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들을 바라보며 저희 부부는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바로 얼마 전, 저희가 한 해 동안 농사지은 결실을 수확했습니다. 그 날, 연세 많으신 논 주인 어르신도 지팡이를 짚고 나오셨습니다. 남편 친구도 콤바인을 빌려주어서 누렇게 익은 벼를 수확하기 시작했습니다.

올 봄, 트랙터로 논을 다지고, 그 위에 모를 심을 때만 해도 이렇게 가슴 떨리지 않았는데, 수확을 한다는 기쁨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내 평생 농부의 아내로 살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 했지만, 눈물과 땀방울로 거두어들인 결실물을 보면서, 앞으로 이곳에서 “다시 시작해보자!”라고 다짐했습니다.

그 동안 흘린 눈물과 땀방울을 잊지 말고 더욱 힘내서 살아보자고 결심, 또 결심했습니다.

전북 완주 | 최이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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