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내한 공연 중인 ‘태양의 서커스’ 단원 니키타 모이시프(12) 군은 오전 10시에 일어난다. 전날 밤에 공연이 끝나기 때문에 늦잠을 잔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호텔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숙제를 한 뒤 학교로 간다. 학교는 ‘태양의 서커스’가 공연장인 잠실 종합운동장 안에 마련한 것으로 캐나다 퀘벡의 정규 교과 과정대로 운영된다. 이 학교에는 9명이 다닌다. 니키타 군은 오후 6시까지 수업을 한 뒤 그날 공연 연습을 시작한다.
“(공연 도중에) 사진을 찍으면 절대 안돼요. 눈이 부셔서 우리가 위험해질 수 있어요.” 이 말을 한국어로 외는 게 영 쉽지 않은 눈치다. 그가 “자, ‘알레그리아’입니다!”라고 외쳐야 서커스가 시작된다.
길거리 공연을 하던 캐나다 사람 20명이 창단한 ‘태양의 서커스’는 20여 년 만에 직원 4000명, 연간 1조 원을 벌어들이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이 서커스단이 12월 27일까지 잠실 종합운동장 내 천막극장 ‘빅탑’에서 ‘알레그리아’를 공연하고 있다. 니키타는 형 빅터(25), 아버지 사샤(51)와 함께 한무대에 서는 ‘서커스 아티스트’다.
모이시프 가족의 서커스는 폭 15cm의 막대 위에서 보여 주는 ‘러시안 바 액트’. 트램펄린처럼 휘어지는 막대 위에서 공중제비를 돌고 회전을 하는 곡예다. 니키타도 이 중 곡예사의 품에 코알라처럼 안겨 공중에서 돈다.
“1986년 공연 중 12m 상공에서 떨어져서 크게 다쳤어요. 나흘 동안 무의식 상태였고 1년여의 회복기를 거쳐야 했습니다. 그 후로… 다리가 두 번, 팔이 두 번 부러졌네요. 다른 사람들이야 쉬겠지만 우리는 공연이 있으니….”
“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모스크바서커스단의 단원이었고 어머니는 서커스단의 댄싱 코치였어요. 여덟 살 때부터 아버지가 다양한 곡예를 가르쳐 줬지요.” 캐나다 공연 중 극장 안내요원이었던 아내 레노어(24)를 만나 전 세계를 함께 이동하고 있다는 빅터는 “내 혈액형은 ‘서커스형’”이라고 말한다.
한곳에서 2, 3개월 계속되는 공연이 끝나면 2∼4주 쉰다. 휴식이 길 땐 고향 모스크바로 가고, 짧을 땐 이웃 나라를 여행한다. 서울에 오기 전 브라질과 칠레 공연을 다녀온 니키타는 간단한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를 할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과 과학”이라며 눈을 빛내는 평범한 소년이지만 니키타의 꿈은 아버지와 형처럼 훌륭한 곡예사가 되는 것이다.
곡예사 아닌 다른 직업을 꿈꿔 본 적이 있느냐고 빅터에게 물었다. “글쎄요…, 영화배우 정도?”라며 웃더니 빅터는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내 인생이 이곳(서커스단)에 있다”고 말했다. “떠돌아다니는 삶이 힘들지 않으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많은 곳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만큼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어요.” 사샤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서커스 무대에 서는 것은 여러분이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과 같아요. 직장 중 하나인 거죠. 집시처럼 돌아다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을 얻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언젠가 정착하고 싶지 않을까? 사샤는 “그렇다”고 했다. “한곳에 집을 짓고 가족과 함께 사는 모습은 마음속에 항상 간직한 꿈입니다. 모스크바에 잠시 방문하는 게 아니라 영원히 거주하는 모습을 그려 보곤 해요. 하지만 지금의 (유랑) 생활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는 “삶의 패턴은 달라 보이지만 ‘태양의 서커스’도 단원들이 만나서 소통하며, 서로 의지하고 도우면서 살아가는 하나의 세계”라면서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게 우리의 바람인 만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무엇보다 먼저 터득하게 된다”고 말했다. 5만∼20만 원. 02-541-3150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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