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더욱 긴장하며 미국 대선을 지켜봤다.(웃음)
버락 오바마의 당선은 양극의 조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큰 사건이다. 오바마라는 인물 자신이 흑과 백, 제1세계와 제3세계 등 갈등의 상징적 존재다.”
2001년 ‘예수는 없다’로 종교계 안팎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비교종교학자 오강남(67·사진)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가 최근 속담을 종교적으로 풀이한 수필집 ‘움켜쥔 손을 펴라’를 출간했다. 26일 만난 그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유머를 구사하면서도 다양한 비유와 촌철살인으로 종교계 세태를 꼬집었다.》
‘예수는 없다’ 쓴 비교종교학자 오 강 남 교수 이번엔 수필집 펴내
―왜 움켜쥔 손을 펴야 하나.
“남태평양에서 원숭이를 잡는 얘기가 있다. 나무에 원숭이 손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구멍을 뚫고 땅콩이나 과자를 넣어둔다. 땅콩을 움켜쥔 원숭이는 욕심 때문에 손을 펴지 못하고 결국 사냥꾼에게 잡힌다. 손을 펴야 하는, 비워야 할 때를 모르면 자유를 빼앗긴다.”
―독자들은 움켜쥔 책을 꼭 쥐어야 하는 것 아닌가.(웃음) 제목이 불교적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불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에 해당한다. ‘장자’에서 공자는 제자 안회가 위(衛)나라 정치에 참여하려고 하자 모든 재능을 갖고 있어도 마음을 가난하게 비우는 심재(心齋)가 부족함을 타이른다.”
―2006년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이후 첫 책인데 속담과 관련된 책이라 의외다.
“1983년부터 속담을 소재로 쓴 글들을 모았다. 25년 걸렸으니 가장 준비가 철저한 책이다. 하하.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속담 전문가였고 그 영향으로 나도 종교 현상을 설명하면서 속담을 자주 인용했다. 속담이 일종의 사회적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정부의 종교편향 문제로 불교계의 저항이 컸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보수적, 독단적 신앙관이 문제다. 18세기 계몽주의 이후 과학의 발전으로 더는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믿습니다’가 아니라 깨달음으로 가야 한다.”
―깨달음은 불교적 해석 아닌가.
“아니다. 모든 종교에 해당하는 말이다. 각 종교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표피와 심층이 있다. 문자에 매달리면 심층으로 가지 못하고 보수적 근본주의에 머물게 된다. 달을 봐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봐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경우 4세기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파기를 지시했지만 당시 깨달음을 강조하는 복음서가 많았다.”
25일이 첫 손자인 이언 군의 돌이었다. 해박한 종교 이론을 펼치던 그도 국내 강연 일정과 책 출간 때문에 챙기지 못한 손자 얘기가 나오자 금세 눈가에 웃음이 번졌다. 아들은 키우면서 좋았지만 큰 의무감을 느꼈는데 손자는 무조건 신기하고 귀엽단다.
―미국 대선 당시 오바마가 다니던 그리스도연합교회 제러마이어 라이트 목사의 ‘갓댐 아메리카’ 발언이 논란이 됐다.
“비슷한 성향의 캐나다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사정을 아는데 선거 국면에서 과장된 면이 많다. 라이트 목사의 진의는 현재 미국의 빈민문제나 대외정책이 기독교적 이상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새삼스러운 질문이지만 종교란 무엇인가.
“내 속에 있는 신(神)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참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교회나 절에 열심히 가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일부에서는 당신을 반(反)기독교 인사로 여긴다.
“나는 반기독교적이지도 않고 종교 무용론을 주장한 적이 없다. 오히려 종교의 표피가 아니라 심층까지 더욱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종교는 이성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다. 이성에 못 미치면 그것은 종교가 아니다.”
―타 종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는….
“산에 높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른 종교를 알수록 자신의 신앙이 풍부해지고 삶도 여유롭게 된다.”
―은퇴를 하고 할아버지도 됐는데 나이가 종교에 대한 관점에 영향을 미치나.
“‘예수는 없다’ 출간 무렵 보도자료에 ‘인생의 마침표’란 표현이 있었는데….(웃음) 그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신앙뿐 아니라 삶에서도 심층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오 교수는 종교인들에 대한 당부에서 “아널드 토인비는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한 문명은 생존하고, 그렇지 못하면 사라졌다고 했다”며 “국가나 종교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