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피아니스트 엘리자베스 로의 첫 공식 내한 무대는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그는 전액 장학금을 받는 줄리아드 음악원 학생의 신분으로 서울 예술의 전당 신년 음악회에 초대받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했다. 당시 그는 오케스트라에 전혀 굴하지 않는 비범한 스케일과 그러면서도 따뜻하게 지펴지는 서정성으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로부터 약 7년 뒤인 이달 25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첫 내한 리사이틀은 오히려 다소 늦은 감이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이 길었던 만큼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많았던 모양이다. 바흐의 프렐류드에서부터 시작한 프로그램은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 코릴리아노, 바그너, 라벨, 쇼팽, 무소륵스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일단 양적으로 압도적이었다. 그중에서도 라벨과 바그너, 무소륵스키의 작품은 오케스트라 원곡이 따로 있는 대단한 스케일을 가진 작품이었다.
국내 초연이 거의 확실한 코릴리아노의 ‘에튀드 판타지’는 청중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만큼 생동감이 넘쳤다. 이어서 연주된 바그너의 ‘사랑의 죽음’은 스케일이 아쉬웠지만 작품에 내재된 낭만적 요소가 서정적으로 잘 살아 났다. 라벨의 ‘라 발스’의 재기발랄한 리듬감은 그에게 꼭 어울렸으며, 2부에 연주된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만화 ‘판타지아’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묘사와 입체감이 두드러지는 호연이었다. 넘치는 감동까지는 아닐지라도 음악이 가진 낙천적인 미덕을 유감없이 발휘한 첫 리사이틀이었다.
노승림 음악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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