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버지는 술 마시고 골목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다 자빠져서 이마가 찢어졌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지긋지긋했습니다.”
경수는 한숨만 나온다. 학교에 이렇게 적어 갈 순 없는데. 오늘 숙제는 할아버지가 살아온 얘기 적어 오기다. 하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 얘기를 물었다가 괜히 할머니와 아빠가 말다툼을 벌이게 만들었다.
“네 할아버진 술만 마시면 길에서 노랠 불렀지.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아이고, 아직도 그 지긋지긋한 노래 생각나네.” “어머니는 애한테 주정뱅이 손자라고 꼭 말씀하셔야겠어요?”….
2005년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으로 호평받은 저자의 두 번째 단편 동화집. ‘할아버지 숙제’를 포함해 동화 5편이 실려 있다.
동화에 등장하는 아이는 크든 작든 한결같이 고민과 문제를 품고 있다. 돌아가신 주정뱅이 할아버지가 부끄럽거나(‘할아버지 숙제’), 길눈이 어두워 4학년이 되도록 어린 남동생을 따라다녀야 하고(‘멀쩡한 이유정’), 엄마가 동생을 낳으러 병원에 입원하자 학원을 빠져도 된다고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책감도 느낀다(‘그냥’)….
저자는 이 세상에는 문제없는 사람도, 문제없는 집도 없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일러준다. 그럼으로써 저마다 갖고 있는 고민 때문에 혼자만 못났다고 생각해 가슴앓이를 하거나 멀쩡해 보이기 위해 애쓰는 아이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유쾌하게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유머러스한 문체 덕분에 아이들의 고민이 경쾌하게 그려진다. ‘새우깡’이 아닌 ‘진짜 새우’를 먹어 보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얘기를 그린 ‘새우가 없는 마을’은 마음을 짠하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웃게 만든다.
‘할아버지 숙제’에서 경수는 주정뱅이 할아버지에 대해 거짓말을 쓰는 대신 자신만의 숙제 방법을 찾아 문제를 해결한다. 같은 사실이지만 좋은 쪽으로 바라보기. 그러자 크게 자랑할 건 없지만, 부끄럽지도 않은 글이 됐다.
“우리 할아버지는 노래를 잘 부르셨다. 별명은 ‘가수’였다. 할머니는 아직도 할아버지를 잘 기억하고 계신다. 할아버지가 부른 노래도 생각난다고 하신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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