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 프로기사회가 25일 열린 기사총회에서 이 문제를 놓고 찬반투표에 들어갔습니다. 이 투표는 25일 저녁 8시경에 시작돼 다음날 오전 11시에 가까스로 마감이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치열하고 뜨거웠는지 상상이 가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결과는 뜻밖에도 찬성파의 완승. 찬성 124표, 반대 34표, 무효 5표로 총 163명이 참여해 무려 76%라는 엄청난 찬성표가 쏟아져 나온 것이지요.
그렇다면 과연 이 ‘컷오프제’란 무엇일까요?
테니스 또는 골프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한 마디로 말해 정해진 등수(예를 들어 64강) 안에 들지 못하면 대국을 해도 돈을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얘기 아니야?” 하는 분도 게시겠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바둑계에서는 대회에 참가한 모든 기사에게 성적에 따라 대국료를 분배하는 시스템을 고수해 왔습니다.
전 기사의 참여를 독려하고, 프로기사에 대한 예우적 차원에서 본다면 백번 좋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한 제도입니다만, 매년 10명씩 늘어가는 프로기사의 수와 반대로 동결 또는 축소되고 있는 기전예산을 생각한다면 바둑계의 주름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근년 들어 젊은 소장파 기사들을 중심으로 컷오프제 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꾸준히 불거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노장파들은 ‘당위성은 이해하나 현실적인 보완책이 없이는 불가’를 외치며 강하게 반발했지요.
지난 9월 30일에는 이 문제를 놓고 찬성파와 반대파들이 한국기원 공개토론회에서 화끈한 설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결론은 없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쌍방의 입장만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런 투표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컷오프제가 비단 팬들뿐만 아니라 프로기사들 스스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28일 한국기원은 프로기사회의 투표결과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내용은 ▲투표가 기사총회 당일이 아닌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으므로 효력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며 ▲투표는 프로기사들의 의견을 반영할 목적으로 시행된 것으로 구속력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기원은 또한 컷오프제가 곧 시행될 것이라는 일부 매체의 보도를 부정하면서 향후 프로바둑계 전체에 끼칠 영향을 신중히 고려하고, 정관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처리해 나갈 것이라 밝혔습니다.
컷오프제를 오매불망 기다려 온 팬들과 기사들로선 어쩐지 김이 빠지는 얘기입니다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한국기원 역시 쉽사리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컷오프제는 한국 바둑계가 새로운 발전적 패러다임으로 진입하기 위한 수많은 관문의 하나일 뿐입니다. 바둑계가 그토록 소망해 온 ‘스포츠바둑’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장고가 곧 묘수를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한국기원의 ‘신중한 고려’가 지금까지 왕왕 그래왔듯 단순한 시간 끌기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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