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움직임은 1960년대 이래로 지금까지 이른바 ‘장소특정적’ 미술로 불리면서 고루한 갤러리용 미술에 일침을 가하는가하면, ‘열린 미술’을 목표로 대중의 일상에 보다 깊숙이 다가가고자 한다.
여기서 일단 필자의 머릿속에 금방 떠오르는 서울의 특정 장소들을 열거해보면, 숭례문, 서울역, 청계천, 낙원동, 세운상가, 충무로, 압구정동, 동대문운동장, 이태원, 그리고 수많은 뉴타운 동네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동대문운동장은 최근 들어 건축가나 미술가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 장소들 중 하나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작년부터 ‘동대문운동장 공원화사업’으로 국내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동대문운동장은 이라크 출신의 세계적인 여성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의 설계에 의해 2010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로 다시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이 곳을 주제로 삼고 있는 미술 작품 대부분은 동대문운동장을 새로 태어나게 할 건축가의 의지와는 반대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새로이 태어날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에 의해 망각될 운명에 처해있는 ‘동대문운동장’을 둘러싼 우리네의 삶의 기억들을 다시 불러내고자 한다.
현재 충무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동대문운동장’도 바로 이곳에 아로새겨진 탄생과 죽음, 기쁨과 슬픔, 기억과 망각을 불러내는 전시이다.
역사적으로 동대문운동장은 1926년 건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종합운동경기장이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달고 시작된 장소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셀 수 없이 많은 우여곡절과 희비로 가득 찬 장소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이 곳은 조선시대 장병들의 무술훈련 장소였으며, 갑신정변 때는 고종이 파천한 장소였다. 설상가상으로 동대문운동장 건립 자체가 일제강점기 식민지 정책의 일환이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후 1945년 해방을 맞이하면서 이 곳은 군중의 단골 집회장소로서, 가난한 일상에 찌든 서민들의 시름을 스포츠로 달래준 위안의 장소가 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2008년 철거의 운명을 맞는다.
사실 2010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가 준공되고 나면 필자부터 동대문운동장에 깃든 기억을 쉽게 잊을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장소란 기억과 망각이 수시로 교차되는 우리 인간의 삶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가 새로운 볼거리로 가득 찰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시당국이나 해당 설계사무소에 딴지를 걸 의도는 없다.
다만 그 곳에 새겨진 각양각색의 기억을 가끔은 누가 잡아주었으면, 누가 불러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박 대 정
유쾌, 상쾌, 통쾌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미술 전시를 꿈꾸는 큐레이터
사진제공|충무아트홀
[큐레이터 Ms. Park의 라이브갤러리] ‘서울환경미화도’와 공공미술 재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