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영화제 행사장도 연기 무대

  • 입력 2008년 12월 2일 02시 51분


심심한 영화제에 표정입힌

김윤진 김혜수의 미소한방

《현재 국내에선 권위 있는 영화상이랄 수 있는 제29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지난달 20일 열렸다. 시상식에는 유명 배우를 비롯해 영화인들이 다수 참석했다. 진행상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지만,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난 판단한다. 다만, TV로 생중계된 일부 배우의 모습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면이 있었다. 이는 단지 청룡영화상뿐 아니라 국내 여러 영화상 시상식에서 발견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국내 영화상 시상식들이 앞으로 더욱 성공적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들의 모습을 짚는다.》

시상식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는 유명 배우들의 얼굴은 그 자체로 대단한 스펙터클이며 볼거리다. 어쩌면 시청자들은 ‘누가 무슨 상을 타느냐’보다 스크린에서나 만날 수 있는 스타들의 얼굴을 ‘종합선물세트’로 볼 수 있다는 현실에 더 흥분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시상식에 참석하는 배우라면 자신의 모든 표정을 ‘연기’와 ‘팬 서비스’의 연장선으로 인식하고 이를 주도면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시상식에 참석한 일부 배우의 얼굴은 어찌나 차갑고 엄숙한지….

이번 시상식을 여는 초대 손님으로 나온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 그들이 히트곡 ‘미로틱’을 부르는 순간을 볼까. 동방신기는 열심히 “넌 나를 원해. 넌 내게 빠져. 넌 내게 미쳐. 넌 나의 노예”라며 유혹적인 가사를 목청껏 노래했지만, 이를 쳐다보고 있는 배우들의 모습은 전혀 ‘원하’지도 ‘빠져’ 있지도 ‘미쳐’ 있지도 않았다. 카메라를 통해 잡힌 여배우 김민선 이미숙 한채영 손예진의 모습은 무표정에 가까웠으며, 딴 데를 바라보거나 심지어 화난 듯한 표정도 있었다.

배우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 너무 긴장했거나, 둘째, 진짜로 동방신기에 관심이 없거나(아니면 동방신기를 싫어하거나), 셋째, 싱싱한 동방신기 멤버들에게 ‘흑심’을 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고 싶거나…. 하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그가 프로페셔널이라면 반대로 ‘동방신기에 무지하게 관심 많은 척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어야 했다.

내가 만난 배우들 중 적잖은 수는 이렇게 푸념한다. “한국 관객은 너무 심각해요. 꼭 예술영화여야만 인정하나요? 오락영화도 편안하게 웃고 즐겨주는 넉넉한 자세가 있었으면…”이라고. 난 똑같은 말을 배우들에게 해주고 싶다. 배우가 먼저 무표정하거늘 어찌 관객이 웃고 즐기길 바라는가.

이번 시상식을 통해 가장 빛난 스타는 배우 김윤진과 이미연, 그리고 진행을 맡은 김혜수였다. 스릴러 영화 ‘세븐 데이즈’에서 열연했던 김윤진은 역시 ‘월드 스타’였다. 그녀는 매우 안타깝게도 여우주연상을 손예진에게 넘겨줬지만, 시종 들뜬 듯한 화려한 미소를 단 1초도 잃지 않았다. 그렇다! 속으론 열불이 나고 복장이 터질지라도 겉으론 안 그런 척, 시상식을 즐기는 척, 꿈을 먹고 사는 척 아름답고 매혹적인 표정을 짓는 것이 배우의 본분이다.

김혜수는 프로페셔널이다. 매년 가슴이 심각하게 파인 뇌쇄적인 드레스를 입고 나와 즐거운 이야깃거리를 선물해 주는 김혜수. 초등학교 선생님 같은 그녀의 또박또박한 말투도 섹시하거니와 가수 ‘비’가 노래 ‘내 여자’를 부르면서 다가가 장미 꽃다발을 건넬 때의 그녀를 보았는가. 순간 살짝 유혹당한 듯한, 그러면서도 살짝 튕기는 듯한 그녀의 표정은 그녀가 시상식 자체를 또 하나의 ‘영화’로 인식한단 사실을 증명한다. 김혜수가 가수 비를 실제론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건 문제가 안 된다. 중요한 건, 그 순간 시청자들이 원하는 표정을 김혜수는 짓는다는 사실이니까.

동방신기와 중견배우 김수미가 시상자로 무대에 함께 나와 “(우린) 요즘 유행하는 연상연하 커플이네”(김수미) “실제로 만나 뵈니 너무 섹시하세요”(동방신기의 시아준수) 같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주고받는 이유가 뭔가. 바로 시상식 자체가 화려한 ‘쇼’이기 때문이다.

영화제를 완성시키는 건, 바로 영화인 자신이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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