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중(53) 한남대 건축학과 교수는 주택을 의뢰한 건축주에게 그 집의 이름을 소개하는 시와 산문을 함께 선사한다.
옛 한옥처럼 당호(堂號)를 만들어 얹는 것이 그의 주택 건축을 마무리하는 디테일 작업인 셈. 김 교수는 충남 논산 가야곡면 산노리 탑정호숫가에 자리 잡은 ‘사미헌(四美軒)’을 마감하는 시에 “풍경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바람에 흩어지거나 물속으로 스며든다…넘치고 차고 흩어지고 휘도는 모든 것에 편히 쉴 것을 권하는 건축”이라고 썼다.
사미헌의 네 가지 아름다움은 좋은 날, 좋은 경치, 좋은 마음, 좋은 일이다. 하늘 높은 날에 주위를 감싼 아름다운 풍광을 먼 길 찾아온 손님들과 더불어 나누는 일이 집 주인의 큰 행복이라는 뜻이다.
건축주 방석식(62) 씨는 김 교수가 2006년 충남 공주 ‘어사재(於斯齋·지금과 여기에 충실한 집)’를 완공한 뒤 3일간 열었던 공개행사에 참석하고 나서 ‘이분에게 내 집 설계를 맡겨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집안 곳곳 창문에 주위의 자연을 액자처럼 잘 담아 놓은 집이었습니다. 울긋불긋 요란하게 치장하지 않는 스타일도 맘에 들었고요. 사미헌 3층 안방에서 잠자리에 누우면 은은한 달빛이 호수를 넘어 창가로 스며듭니다. ‘내가 집에 돌아왔구나’ 안도하며 잠들 수 있죠.”
김 교수는 ‘사람이 돌아가 쉴 장소’로서의 집은 묵직한 고요함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출복을 벗으면서 스트레스도 함께 벗을 수 있는 공간. 노출콘크리트를 외장마감재로 즐겨 쓰는 것은 땅에 뿌리를 내린 견고한 삶의 뼈대라 할 만한 중량감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2006년 10월 이 집의 설계를 요청받고 나서 김 교수는 망설였다. 풍광이 아름다운 땅에 건물을 올리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주변을 감싼 풍성한 경관을 조심스레 열고, 닫고, 비우고, 채우며 설계를 완성하는 데 꼬박 7개월이 걸렸다.
내부는 한지와 자작나무 합판으로 단정하게 마감했다. 눈을 피곤하게 하는 요소를 집안에서 치워 없애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얼핏 투박해 보이는 단순한 내부공간에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마감 디테일은 섬세하게 떨어진다. 정교한 마감을 위해 김 교수는 설계사무소와 별도로 시공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건축면적은 150m²로 택지 매입비를 제외한 건축비는 3억5000만 원. 1월 완공한 뒤 집을 보러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집의 중심인 1층 나무 바닥 정원은 이들을 위해 비워 놓은 공간이다. 계단 옆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집 전체의 성격을 보여주는 메인 프레임이다.
김 교수는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화가 김인중 신부의 동생이다. 젊은 시절 형의 도움으로 프랑스에 유학을 갔다가 그림에 대한 형의 훈수에 자신만의 시각을 잃을까 두려워 스위스로 떠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형이 그때 한 말이 다 맞아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마음속에서 그리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하셨죠. 집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집을 지어 주변 환경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설계 전의 고민이 치열할수록 결과물이 덜 부끄럽지요”.
논산=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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