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삶 어우러진 집]<9>김억중 교수 설계 논산 ‘사미헌’

  • 입력 2008년 12월 3일 02시 58분


자연을 담은 창문… 자연에 담긴 정원

김억중(53) 한남대 건축학과 교수는 주택을 의뢰한 건축주에게 그 집의 이름을 소개하는 시와 산문을 함께 선사한다.

옛 한옥처럼 당호(堂號)를 만들어 얹는 것이 그의 주택 건축을 마무리하는 디테일 작업인 셈. 김 교수는 충남 논산 가야곡면 산노리 탑정호숫가에 자리 잡은 ‘사미헌(四美軒)’을 마감하는 시에 “풍경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바람에 흩어지거나 물속으로 스며든다…넘치고 차고 흩어지고 휘도는 모든 것에 편히 쉴 것을 권하는 건축”이라고 썼다.

사미헌의 네 가지 아름다움은 좋은 날, 좋은 경치, 좋은 마음, 좋은 일이다. 하늘 높은 날에 주위를 감싼 아름다운 풍광을 먼 길 찾아온 손님들과 더불어 나누는 일이 집 주인의 큰 행복이라는 뜻이다.

건축주 방석식(62) 씨는 김 교수가 2006년 충남 공주 ‘어사재(於斯齋·지금과 여기에 충실한 집)’를 완공한 뒤 3일간 열었던 공개행사에 참석하고 나서 ‘이분에게 내 집 설계를 맡겨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집안 곳곳 창문에 주위의 자연을 액자처럼 잘 담아 놓은 집이었습니다. 울긋불긋 요란하게 치장하지 않는 스타일도 맘에 들었고요. 사미헌 3층 안방에서 잠자리에 누우면 은은한 달빛이 호수를 넘어 창가로 스며듭니다. ‘내가 집에 돌아왔구나’ 안도하며 잠들 수 있죠.”

김 교수는 ‘사람이 돌아가 쉴 장소’로서의 집은 묵직한 고요함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출복을 벗으면서 스트레스도 함께 벗을 수 있는 공간. 노출콘크리트를 외장마감재로 즐겨 쓰는 것은 땅에 뿌리를 내린 견고한 삶의 뼈대라 할 만한 중량감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2006년 10월 이 집의 설계를 요청받고 나서 김 교수는 망설였다. 풍광이 아름다운 땅에 건물을 올리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주변을 감싼 풍성한 경관을 조심스레 열고, 닫고, 비우고, 채우며 설계를 완성하는 데 꼬박 7개월이 걸렸다.

“주변과 소통하는 공간의 여닫음 외에 주택의 모든 다른 요소는 그 흐름을 보조하는 장치일 뿐입니다. 집에서 소중한 것은 방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에 있어요. 하늘과 구름, 빛과 그림자는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하는 중요한 재료입니다.”

내부는 한지와 자작나무 합판으로 단정하게 마감했다. 눈을 피곤하게 하는 요소를 집안에서 치워 없애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얼핏 투박해 보이는 단순한 내부공간에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마감 디테일은 섬세하게 떨어진다. 정교한 마감을 위해 김 교수는 설계사무소와 별도로 시공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건축면적은 150m²로 택지 매입비를 제외한 건축비는 3억5000만 원. 1월 완공한 뒤 집을 보러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집의 중심인 1층 나무 바닥 정원은 이들을 위해 비워 놓은 공간이다. 계단 옆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집 전체의 성격을 보여주는 메인 프레임이다.

김 교수는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화가 김인중 신부의 동생이다. 젊은 시절 형의 도움으로 프랑스에 유학을 갔다가 그림에 대한 형의 훈수에 자신만의 시각을 잃을까 두려워 스위스로 떠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형이 그때 한 말이 다 맞아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마음속에서 그리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하셨죠. 집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집을 지어 주변 환경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설계 전의 고민이 치열할수록 결과물이 덜 부끄럽지요”.

논산=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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