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조선후기 명창 이선유 五歌전집 연구서 발간

  • 입력 2008년 12월 4일 02시 56분


‘귀명창’ 김택수가 사설 채집정리

1962년 동아일보 보도로 밝혀져

“국악사에서 예나 지금이나 ‘귀명창’(판소리 애호가)의 역할은 무척 중요합니다. 구비 전승되던 판소리 다섯 마당의 사설(가사)을 최초로 정리한 사람도 소문난 귀명창이었지요.”(최난경 고려대 민족문제연구원 연구원)

일제강점기인 1933년 대동인쇄소에서 출판된 ‘이선유 오가전집(五歌全集)’은 국악사와 국문학사에 큰 의미가 있는 책이다. 구비 전승되는 과정에서 잊혀지거나 변해 온 판소리 다섯 마당의 사설을 정리한 최초의 자료였기 때문이다. 이선유(1873∼1949) 명창이 부른 판소리 다섯 마당을 김택수(1895∼1976)가 받아 적어 책으로 펴낸 것으로 동편제 판소리의 원형이 담겨 사료적 가치가 높다. 하지만 이 명창이나 저자인 김택수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최난경 씨는 9년 동안 문헌과 현지 조사를 통해 이 명창이 태어나고 활동했던 경남 하동 및 진주 일대와 운현궁에서 판소리 명창들의 후원자 역할을 했던 김택수의 삶을 추적해 ‘이선유 오가전집 연구’(박이정)를 펴냈다.

이 책에 기록된 이 명창의 ‘동편제’는 송만갑이 대중의 취향을 반영해 새롭게 개혁한 ‘신제(新制) 동편제’가 아니라 송흥록 김세종에게 배운 ‘고제(古制) 동편제’를 원형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김택수는 일제강점기 시절 운현궁의 집사장으로 일하면서 명창들의 뒤를 보살펴 주던 귀명창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이 명창의 사설을 정리하게 된 사연은 동아일보 1962년 11월 14일자 ‘문화재 도로 찾기 운동’ 기사를 통해 비로소 밝혀졌다.

그는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바람이 나서 한 노릇이긴 했지만 그보다 더 큰 목적은 우리 고유의 노래를 성문화해 보았으면 하는 욕심과 국악학교의 설립에 있었다”고 밝혔다. 기사에는 또 김 씨가 이 명창과 함께 계룡산 동학사에서 한 달간, 경남 덕산의 대원암에서 보름간 머무르며 창을 정리했다고 소개돼 있다.

최 씨는 “일제강점기 판소리 쇠퇴기에 ‘귀명창’들은 판소리 보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며 “특히 판소리 애호가였던 대원군과 혼맥이 닿는 김택수는 운현궁을 지키면서 명창들을 돌봐 줘 감시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이번 연구를 통해 조선 후기 판소리 전승지역 가운데 하동, 진주 등 경상도 지역의 중요성을 새롭게 주목했다. 경상도는 19세기 양반 관료들이 판소리 명창들을 불러다가 판소리를 즐겼던 곳. 20세기 들어서는 여창(女唱) 소리꾼이 많이 나왔지만 광복 이후 권번의 쇠퇴와 함께 판소리의 맥이 끊어졌던 지역이다. 최 씨는 “판소리 연구자에게 경상도는 ‘판소리의 신대륙’”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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