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청년 유태경 씨가 주간으로 중국 대만 조선 일본 등의 청년 논객들이 참가하고 있으며 아시아 제(諸) 민족의 각성을 촉구하고 약소민족의 해방을 추구한다.” 동아일보 1922년 7월 27일자 신간 소개에 실린 ‘아세아공론(亞細亞公論)’에 대한 기사다.》
아세아공론은 유태경(1892∼?)이 ‘아시아의 연대’를 기치로 1920년대 일본 도쿄에서 발행한 시사월간지. 한중일 지식인들이 필자로 참여해 3개국 언어로 제작하는 방식 덕분에 주목받았으나 이후 학계에선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
○ 오늘 ‘동아시아교류…’ 학술회의서 재조명
동북아역사재단은 5, 6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동아시아의 지식 교류와 역사기억’을 주제로 여는 국제학술회의에서 아세아공론과 유태경의 진면목을 조명한다.
유태경은 조선과 일본, 중국, 미국을 넘나든 국제적 인물이었다. 평안북도 영변 출신으로 도쿄에서 중학교를 졸업했으며 중국 칭다오대에서 공부했다. 1918년에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렀고 1920년 출소 뒤 도쿄로 가서 아세아공론을 펴냈다.
라경수 와세다대 아시아연구소 연구원은 ‘조선지식인 유태경과 잡지 아세아공론’을, 치수펑 일본 세신(聖心)여대 강사는 ‘다이쇼 시대 재경 대만인 유학생과 아시아-아세아공론을 토대로’를 발표한다.
○ 日서 한중일 3개국어 제작 ‘아세아공론’ 창간
라 연구원의 논문에 따르면 아세아공론은 1922년 5월 창간호 이래 줄곧 일본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글을 게재했으며 1923년 1월 9호를 끝으로 강제 폐간됐다. 유학 중이던 한국 중국 대만 학생들뿐 아니라 자유주의 사상을 지닌 일본의 이시바시 단잔도 참여했다. 이시바시는 전후 2개월 동안 총리를 지내기도 했다.
○ 식민주의 반대-동아시아 연대 주장
라 연구원은 “아세아공론에는 국제적 보편성을 추구하면서도 민족주의자였던 유태경의 사상이 투영돼 있다”고 평가했다. 치수펑 박사는 “1920년대 열린 아시아를 지향하며 국가와 민족의 틀을 넘어 아시아 지식인에게 대화의 장을 제공한 아세아공론은 오늘날 아시아 연대의 방향을 제공해준다”고 해석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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