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단일민족 신화는 만들어진 역사”

  • 입력 2008년 12월 5일 03시 00분


■ 사학자 이희근 씨, 이방인 정착사 다룬 ‘우리 안의 그들…’ 펴내

“진시황 때 중국인 대규모 이주

조선 ‘백정’은 북방 유목민 후예”

2007년 8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외국인 거주자와 혼혈인이 늘어난 한국 사회는 다민족 사회가 된 만큼 ‘단일민족’이라는 관념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단일민족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사회로 가야 한다” “단일민족의 자긍심을 지켜야 한다” 등 논란이 일었다.

역사 저술가 이희근 씨가 최근 출간한 ‘우리 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들’(너머북스)은 오래전부터 중국인과 북방 유목민족 등 한반도 주변의 여러 종족과 민족, 아랍인들이 한반도에 정착해 살았음을 사료를 통해 고증하는 책이다. 그는 “한민족이 단일민족이란 신화는 만들어진 역사, 즉 허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 씨는 단국대 대학원에서 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사, 그 끝나지 않는 의문’ ‘문화유산에 담긴 우리 역사’ ‘우리 민속신앙 이야기’ ‘전환기를 이끈 17인의 명암’ ‘색다른 역사’ 등 역사 관련 저작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저자는 중국 삼국지와 우리의 삼국유사,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 아랍 문헌을 분석해 삼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민족의 한반도 정착사를 써 내려간다.

중국인이 처음 한반도에 이주해 왔던 때는 삼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사람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한 중국 진시황의 폭정을 피해 한반도 남부로 건너온 진의 유민들이 진한과 변한을 세웠다는 것이다.

저자는 “진한의 노인들이 말하기를 (자신들은) 진나라의 망명한 사람들로서 고역(苦役)을 피하여 한국(마한)에 오자 마한이 그들의 동쪽 지역을 분할하여 주었다고 한다”는 후한서(後漢書)와 삼국지 한전의 구절을 예를 든다.

중국의 진(秦) 한(漢) 교체기에도 피란민이 고조선으로 몰려왔다. 후한서 동이열전에는 “한나라 초기 대혼란기에 연(燕) 제(齊) 조(趙)나라 사람으로서 그(고조선) 지역으로 피란 간 사람이 수만 명이나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저자는 이 시기 연나라 사람 위만이 고조선으로 이끌고 온 중국인을 규합해 건국한 나라가 위만조선이라고 말한다. 위만이 고조선 준왕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해 가는 과정이 서술돼 있는 삼국지 동이전을 거론한다.

신라시대에는 아랍 상인들이 신라 행정의 중심이자 국제무역도시였던 경주와 인근 지역에 정착해 살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슬람 역사학자 알 마스오디(?∼965)가 남긴 여행견문록이자 역사서 ‘황금초원과 보석광’에서 “신라국에 간 이라크인이나 다른 나라 사람은 공기가 맑고 물이 좋고 토지가 비옥하며 자원이 풍부하고 보석도 일품이기 때문에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고 언급하고 있음을 소개한다. 신라 38대 원성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경북 경주시 외동면 괘릉 무인석(武人石)이 아랍인의 형상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강조한다.

북방의 유목민족은 기록상 고려 때부터 한반도로 이주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북방 유목민족의 후예인 백정이 조선 초기 전체 인구의 3분의 1 또는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다는 것이 저자의 얘기다. 백정의 대부분을 차지한 거란인은 993∼1018년 고려와 거란 간의 세 차례 전쟁 동안 투항하거나 포로로 잡힌 인원만도 수만 명에 이르렀다. 몽골인의 후예인 달단과 여진족도 한반도로 이주해 상당수가 정착했다고 한다.

저자는 “한반도에서 이민족들과 공존한 역사는 통념과 달리 매우 오래됐다”며 “단일민족 신화에 집착하지 말고 ‘우리 안의 그들’을 받아들여야 다문화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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