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사랑하던 꽃에 갇히다

  • 입력 2008년 12월 6일 03시 00분


‘피에로와 밤의 비밀’ 그림=다니엘 부르, 문학동네
‘피에로와 밤의 비밀’ 그림=다니엘 부르, 문학동네
초여름의 바람이 부드럽게 스쳐 가는 화원에는 수백 종류의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부모는 꽃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넓은 마당을 화원으로 장식하였고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도 자신들의 얼굴이 아니라 창 밖의 꽃밭을 먼저 보여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꽃처럼 영롱하고 아름답게 자라나며 누구에게나 칭찬을 들을 수 있는 모양과 심성을 갖고 살아가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태어난 자녀들도 부모의 기대를 벗어나지 않게 대부분의 일과를 화원에서 꽃을 가꾸고 심으며 지냈습니다. 그들은 화원을 더욱 넓히고 갖가지 나무와 식물을 심고 가꾸어서 그곳을 낙원으로 만들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오직 꽃에만 집착하는 자녀의 모습을 부모는 만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칭찬에 고무된 자녀들은 외국으로 나가 희귀종의 씨앗을 들여와 화원에 심어 꽃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먼 산 속으로 찾아가야 겨우 발견할 수 있었던 나비와 새가 화원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아침에 해뜰 무렵이 되면 갖가지 새가 재잘거리는 노랫소리가 오히려 시끄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화원을 넓혀 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넓은 화원을 가졌음에도 심은 꽃의 수효가 너무 많아 집안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 있는 길과 계단을 허물거나 거실의 벽을 쳐서 흙을 깔고 꽃 심을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이제 그들이 살았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사방은 온통 꽃으로 장식되었습니다.

식구들은 밤이 되면 이제 길거리로 나가 겨울잠을 자는 애벌레처럼 쪼그리고 선잠을 자야 했습니다. 걸을 때도 심은 꽃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까치발을 하고 조심조심 걸었습니다. 꽃과 나무가 행여 병이라도 들게 되면 온 식구가 그 앞에 모여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꽃의 성장이나 꽃 피우기에 장애가 되는 일은 절대로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어느 날 식구 중에 한 사람이 식량을 구입하기 위해 외출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는 채비를 끝내고 장바구니를 찾아 들었습니다. 그리고 현관문을 나서려 하였습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그의 표정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나절에 외출을 시도했지만 해질 때까지 결말을 보지 못하고 같은 장소를 반복해서 맴돌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꽃 심는 한 가지 일에만 열정을 쏟았던 나머지 자신들의 삶의 축이 미로가 되어 닫혀버렸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작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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