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가 불황에도 스테디셀러로
소설 ‘토지’의 작가 고 박경리 선생과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의 시집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박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인 6월 22일 나온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마로니에 북스)가 10만여 부 나갔다. 8월에 나온 이 교수의 생애 첫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문학세계사)도 1만2000여 부가 나가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이름 있는 시인들의 시집도 초판 몇천 부 판매가 쉽지 않은 최근 상황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개인 시집은 1만여 부만 나가도 ‘대박’으로 불린다. 특히 개인 시집 중 최근 히트작은 1994년에 나온 ‘서른, 잔치는 끝났다’(55만여 부·최영미)이고 이해인 수녀와 류시화 시인의 시집이 통상 10만 부 이상 나간다고 출판계는 보고 있다.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는 5월 5일 타계한 박 선생이 4월경 계간지 ‘현대문학’에 발표한 신작시 3편 등을 포함한 39편의 시가 실려 있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는 2006년 계간지 ‘시인세계’를 통해 시인으로 공식 등단한 이 교수가 쓴 61편의 시가 담겼다. 이 교수는 “평생 가슴속에 있던 시에 대한 마음을 이제야 꺼내놓아 부끄럼도 들고 후련하기도 하다”면서 “50여 년을 돌아 시라는 종착점에 왔지만 이것이 곧 출발점이라고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문학세계사의 김요안 실장은 “두 분 다 ‘정통 시인’이라 부를 순 없지만 당대 문장가들이 쓴 시집에 독자들이 반응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