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정부 정통성 확립에 기여
■ 내일 60돌 기념 국제세미나
1948년 12월 12일 오후 프랑스 파리 샤이요 궁에서 열린 제3차 유엔총회. 미국이 상정한 ‘한국 독립의 문제’라는 제목의 결의안 195호가 찬성 48표, 반대 6표, 기권 1표로 통과됐다.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유엔 승인을 받는 순간이었다.
유엔 승인 60주년 기념일인 12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그 승인의 배경과 의미를 짚는 국제학술 세미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유엔의 승인’이 열린다. 서강대가 주최하고 동아일보사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대한민국건국60주년기념사업회가 후원한다.
박흥순(국제정치) 선문대 교수는 미리 배부한 논문 ‘건국과 유엔의 역할-유엔의 승인과 의미’에서 유엔이 이 문제를 다루게 된 배경으로 미국의 정책 변화를 들었다. 미국이 한반도를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 정책에 맞설 거점으로 인식하면서 소련과의 협상이 아니라 당시 압도적인 우군을 확보한 유엔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선회했다는 분석이다.
박 교수는 유엔의 승인으로 한국의 제헌국회 구성과 헌법 제정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게 됐고 국내적으로 초대 정부가 정통성을 확립하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허동현(사학) 경희대 교수는 ‘대한민국 승인을 위한 수석대표 장면의 활동’이라는 논문에서 제3차 유엔총회 당시 한국 수석대표로 파견된 장면(당시 제헌의회 의원)을 중심으로 유엔 승인 문제를 조명했다.
1948년 8월 11일 유엔총회 파견 수석대표로 선출된 장면은 한국 대표단을 이끌고 유엔총회 기간인 9월 21일부터 12월 12일까지 유엔회원 58개국 대표들을 찾아다니며 한국 정부 승인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허 교수는 이런 노력이 결실을 본 배경에는 미국의 지원과 더불어 한국 가톨릭계의 대표적인 지도자였던 장면에 대한 바티칸의 호의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교황 비오 12세가 장면이 미국 유학시절 사제 관계로 가까워진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패트릭 번 주교를 1947년 한국에 특사로 파견한 점이 대표적인 사례. 교황청 특사 파견은 국제관례상 교황청이 한국을 주권국가로 승인한 것으로 이해돼 유엔 승인 과정에 힘이 됐다는 것이다. 비오 12세는 제3차 유엔총회 당시에는 한국 대표단을 지원하라는 지시를 교황청에 내렸다고 한다. 허 교수는 “장면이 유엔총회에 파견된 것은 바티칸의 영향력을 활용하려는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적 복선이 작용한 것이었다”고 했다.
교황청을 대표해 세미나에 참석하는 에르윈 조세프 엔더 교황청 국무부 대주교는 연설문에서 “가톨릭 교회 인사들과 선린 관계를 유지했던 장면 박사는 프랑스 주재 교황청 대표 론칼리 대주교와 바티칸 국무장관 몬트니 대주교를 만나 유엔의 승인을 이끌어내는 데 일정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문의 02-705-8117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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