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상의 와인레터] 소믈리에 시험에 물·사케는 왜 나와?

  • 입력 2008년 12월 11일 08시 11분


‘이건 칠레 까르미네르 같은데, 아냐 호주 까베르네 소비뇽인가. 아냐, 아냐 까르미네르가 분명해. 그런데 혹시 아니면 어떡하지’

6일 오전 서울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 워커힐홀에 모인 세 명의 소믈리에는 온 신경을 와인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어떤 정보도 갖지 못한 채 오로지 자신의 후각과 미각으로만 무슨 와인인지 맞히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아무리 오랜 기간 와인을 마시고 공부했어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왕중왕 소믈리에 대회’가 열린 이날 2006년도 우승자 은대환(리츠칼튼호텔), 2007년도 우승자 이윤경(전 롯데월드호텔), 2008년도 우승자 정하봉 씨(JW메리어트호텔) 등 세 명의 소믈리에는 자신이 가진 지식과 기량을 모두 쏟아 부었다.

이날 우승자가 2010년 5월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리는 ‘제13회 세계소믈리에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는 자격을 갖는다.

3시간에 걸친 시험 후 최종 영광은 정하봉 소믈리에에게 돌아갔다. 정 소믈리에는 “준비를 철저히 해 한국 소믈리에의 위상을 드높이겠다”며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맞추는 귀신 따로 있지

이날 대회는 세계소믈리에대회의 경향에 맞춰 치러졌다.

1차 필기시험(60분), 2차 블라인드 테이스팅(80분), 3차 와인서비스, 디캔팅, 음식에 맞는 와인 고르기(40분) 등으로 진행됐다.

필기시험은 와인 지식을 묻는 10문제가 서술형으로 출제됐다. 오랜 시간 공부한 소믈리에들이 가장 부담을 덜 느끼는 부분이다. 본격적인 어려움은 블라인드 테이스팅부터 찾아온다.

이번 대회에는 레드 3종, 화이트 3종, 스파클링 2종, 로제 1종, 스위트 와인 1종, 한국 전통주, 일본 사케 등 아시아 3종, 증류주 2종, 물 2종 등 총 17종이 시험 문제로 출제됐다. 출제 문제를 보고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전통주랑 사케는 뭐고, 또 물은 왜 시험에 들어가는 지 궁금할 터. 이는 세계소믈리에 대회가 와인은 물론이고 다른 술과 물에 대한 지식까지 테스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화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는 와인평론가 토미노 잇세처럼 어느 지역에서 무슨 품종으로 만든 어떤 와인인지, 거기에 빈티지까지 알아 맞히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정답은 ‘예스’다. 이는 부단한 노력과 시간을 통해 가능해진다.

이번 대회 위원장을 맡은 고재윤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교수는 “세계대회에 출전하는 소믈리에들의 경우 4년 정도 와인회사에서 후원을 받아 집중적으로 와인을 마신 뒤 기억을 저장해뒀다 향과 맛을 보고 인출하기 때문에 빈티지까지 귀신같이 맞힌다. 심지어 8년 동안 후원받는 소믈리에도 있다. 이번 대회 출전자들도 빈티지까지 맞혔다”고 말했다.

○세계대회 우승자, 부와 명예를 획득하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의 관문을 통과했다 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는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정하봉 소믈리에는 “음식과 와인의 조화를 고려해 와인을 선택하는 일이 가장 힘든 과제였다”고 식은땀을 훔쳤다.

정 소믈리에는 2년 후 당당히 국제소믈리에협회(ASI)의 42개 회원국 나라별 우승자 42명과 대륙별 대회 우승자 5명을 포함 총 47명의 소믈리에가 출전한 가운데 시험대에 선다.

ASI가 1974년 이후 매 3년 마다 개최하는 세계소믈리에 대회는 우승, 준우승, 3위까지 선발하는 데 12회까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소믈리에들이 우승은 물론 3위까지 순위를 독차지했다.

아시아 국가 중에는 유일하게 일본 소믈리에 타사키 신야가 1995년 8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대회 우승자는 전 세계 와이너리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며 부와 명예를 동시에 손에 쥘 수 있다. 타사키 신야의 경우 연간 20억원 이상을 버는 소믈리에로 유명하다.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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