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 현장은 최근 문청(文靑)들의 글쓰기 풍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10대에서 70대까지 여러 세대가 참여한 응모작은 어느 범주라고 규정짓기 어려울 만큼 소재와 주제 면에서 폭넓었다. 게다가 “시대상이 반영된 탓인지 비장미가 흐르거나 현실적 고민을 담은 글이 많아졌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전반적인 평가였다.
올해 응모작은 9개 부문 모두 2394편으로 지난해 2460편과 엇비슷했다. 시 부문(855편)과 중편소설(299편), 단편소설(570편), 시조(73편), 문학평론(11편) 등은 다소 줄어든 편. 반면 희곡(102편)과 시나리오(156편), 영화평론(21편), 동화(307편) 등은 늘어났다.
시와 중편, 단편소설, 시나리오 예심과 영화평론 본심은 본사 9층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시는 시인 박형준 권혁웅 씨가 중편소설은 소설가 은희경 씨와 문학평론가 황종연 씨가, 단편소설은 소설가 박성원 윤성희 씨와 문학평론가 우찬제 김미현 씨가, 시나리오는 영화감독 권칠인 송해성 씨가 심사를 맡았다. 영화평론가 정지욱 씨는 영화평론 본심을 담당했다.
특히 소설은 ‘사회의 축소판’처럼 다양한 흐름이 감지됐다. 소설가 은희경 씨는 “기러기아빠나 사채업자 등 현실을 반영하는 소재가 늘었다”면서 “혼탁한 현실에서 글이란 매개체를 통해 ‘자아 찾기’를 시도하는 경향이 많았다”고 말했다. 평론가 김미현 씨도 “전후세대인 20대가 6·25전쟁을 이야기하는 등 ‘소재의 성역이 없는’ 자유로움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우찬제 씨 역시 “현장성을 담보한 사회병리학적 소재를 다룬 것이 많았다”면서 “글쓰기가 보편화되면서 전체적인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소설가 윤성희 씨는 “소재나 스토리텔링에 치중하다 보니 묘사나 공간장악력이 부족했다”면서 “인물에 입체감을 부여해 삶의 요철이 묻어나는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론가 황종연 씨도 “신인다운 참신함과 발랄함을 맘껏 표현하는 것도 신춘문예에선 중요한 부분”이라고 조언했다.
시는 힘든 세상살이를 다독이는 따뜻한 위안의 분위기가 강했다. 시인 박형준 씨는 “현실적 체험을 바탕으로 위로를 전하는 시가 많았으며 나이와 상관없는 여러 세대의 참여가 돋보였다”고 말했다. 권혁웅 씨는 “소위 ‘문예 아카데미 시’라 불리는 정형화된 시들이 사라진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보탰다. 다만 두 시인은 “현실을 핍진하게 접근하는 시도가 부족한 게 흠”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나리오 부문의 심사위원들은 ‘영화화 가능성’에 대한 노력을 주문했다. 송해성 감독은 “시나리오는 그 자체로도 문학이지만 실제로 스크린에 옮길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권칠인 감독도 “현실을 치열하게 담으려는 노력을 높이 산다”면서도 “즐겁고 화사한 응모작도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평론 본심을 맡은 평론가 정지욱 씨는 “글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분위기는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전체적으로는 글쓰기에 ‘인터넷’의 영향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평가다. 제약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는 좋으나 의성어·의태어를 남발하거나 기초 문법을 놓치진 않아야 한다는 것. 소설가 박성원 씨는 “이전보다 자신의 감정을 확실하게 드러낼 줄 아는 솔직함은 이번 신춘문예에서 특히 눈에 띄는 발전이지만 ‘절제’를 통해 타인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설득력이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