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전국 4000여개 스크린 골프방 인기몰이
최근 30, 40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스크린 골프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국내에 스크린 골프 관련 회사는 20여 개. 스크린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일명 ‘골프방’ 수도 전국적으로 4000여개(관련업계 추산)에 이른다.
“학교 다닐 때 전자오락 하잖아요? 그거랑 비슷합니다. (어른들이 할) 마땅한 놀이가 없잖아요. 근데 이건 라운드 연습도 할 수 있고 운동도 되니까 좋죠.”(40대 직장인 문석진 씨)
서울 중구 명동 ‘명동 스크린 골프’의 유혜영 사장은 “평일에도 퇴근시간 이후엔 예약하지 않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정도”라며 “노래방과는 달리 게임을 즐기며 대화도 나눌 수 있어 연말 송년회, 회식 및 접대모임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크린 골프에 ‘중독’된 이들이 늘자 최근에는 점심식사(5000원)와 9홀 라운드(1인당 2만 원선)를 패키지로 묶은 ‘런치 세트’까지 등장했다. 엊그제 찾은 서울 종로구 관철동 ‘레몬 스크린 골프’는 런치 세트를 즐기러 온 직장인들로 11개의 방이 꽉 찬 상태였다.
스크린 골프는 스크린 모니터에 펼쳐지는 골프장의 3D화면을 보면서 실제 골프채와 공으로 진짜 필드에서처럼 라운드를 할 수 있는 ‘어른들을 위한 첨단 스포츠 전자오락’이다. 이 분야 연구개발(R&D) 인력 중 상당수는 게임 개발자 출신이다.
어릴 적 즐기던 오락실 오락기와 비교하자면 플라스틱 버튼과 조이스틱은 골프채, 배불뚝이 브라운관 모니터는 대형 스크린으로 변한 셈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단순한 외양 비교일 뿐, 그 안의 기술적 진보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다.
“스크린 골프 시스템에는 3D그래픽 기술을 비롯해 센서 기술, 물리엔진 기술, 컴퓨터 제어기술, 영상 프로젝트 기술, 네트워크 기술 등이 총체적으로 들어갑니다.”(스크린 골프 개발회사 ‘골프존’ 조성인 책임연구원)
수평 및 수직 거리를 감지하는 수십 개의 센서는 공의 높이와 방향을 파악하고, 물리 엔진 소프트웨어는 날아가는 공의 역학을 계산해 잠재적 거리와 속도를 산출한다. 이렇게 생성된 ‘가상 골프공’은 화면 속 필드를 날아간다. 필드는 국내외 유명 골프장을 3D 그래픽으로 재현한 것이다. 공을 칠 땐 ‘사르륵’ 잔디 스치는 소리까지 날 만큼 생생하다. 만약 다른 지역의 플레이어와 경기를 벌이고 싶다면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가상 필드에서 만날 수도 있다.
김영찬 골프존 대표는 “원래 스크린 골프는 미국프로골프(PGA) 선수들의 타구 분석용으로 개발된 것”이라며 “비용과 접근성 면에서 골프장 이용이 쉽지 않은 국내 환경과 맞물려 스포츠 오락용으로 보완 개발됐다”고 설명했다.
○ 1980년대 초 동네 오락실 최고 게임은 ‘갤러그’
2008년 한국 어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스크린 골프와 30여 년 전 학교 앞 문방구에서 코흘리개들을 유혹하던 오락기를 비교해 보면 전자오락 기술의 진화란 놀라울 뿐이다.
국내에 본격적으로 오락기가 보급되기 시작한 1980년대 초, 동네 오락실에 자리하고 있던 네모난 박스형 오락기들은 조이스틱 하나, 버튼 하나의 단순하기 그지없는 구조였다.
당대 최고의 인기 게임이었던 ‘갤러그’의 비행기는 지금 보면 흡사 ‘똥파리’를 연상시킬 만큼 그래픽 수준이 조악했다. 게임 배경음악이라고 해 봤자 ‘띠용띠용’ 아니면 ‘뿅뿅뿅’ 같은 단순 비트가 주를 이뤘다.
오락기 중에는 화면 컬러가 단 두 개인 것도 있었다. 검은색 바탕에 초록색 그림이 나타나는 흑백, 아니 더 정확히는 ‘흑록(黑綠)’ 오락기들이었다.
“그래도 재밌어서 어쩔 줄 몰랐죠. 당시 애들이 놀 만한 거라고는 뛰어다니거나 술래잡기하는 것 정도가 전부였으니까요. 친구 한 명이 게임을 하면 대여섯 명이 몰려들어 구경하곤 했어요. 당시 오락 한 판 값이 50원이었는데, 엄마 몰래 오락실에 가려고 동네를 돌며 빈 병을 주워다 팔았던 기억도 나요.(웃음)”(30대 회사원 김종규 씨)
이 시절 오락기는 비록 그 사양은 일천했지만 게임의 다양성과 재미만큼은 결코 지금에 뒤지지 않았다.
한 일본계 게임회사 관계자는 “8비트, 16비트 기반의 (저사양) 오락기가 주를 이루던 당시에는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5∼10명 규모의 팀으로도 3, 4주 만에 뚝딱 좋은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게임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 수백 명이 2, 3년을 투자하는 지금과는 개발환경 자체가 완전히 달랐던 셈이다.
쉽게 만들 수 있었던 만큼 베끼는 것도 식은 죽 먹기였다. 오락기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1990년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에는 일본 등에서 원판(진품 오락기)을 몇 개 사다 ‘까보고’ 이를 똑같이 복제해 만든 가짜 오락기가 성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오락기 한 대 값은 50만∼100만 원에 달해 복제업자들 중에는 큰돈을 번 사람도 많았다”고 전했다.
○ 전자오락, 오락실을 넘어 더 높이
그러나 컴퓨터 기술과 게임 개발력이 빠르게 진화하면서 이런 상황에도 변화가 왔다. 1991년 개발된 대전(對戰) 액션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2’는 1980년대 전자오락과 1990년대 전자오락을 구분짓는 상징처럼 여겨진다.
“3D 그래픽이나 게임 방식이 월등히 우월해 오락실에 가면 동전을 쌓아놓고 줄을 서 게임을 할 정도로 인기였던 기억이 나요. 이즈음 오락 한 판 값도 50원에서 100원으로 100%나 올랐죠.”(게임 마니아 김대열 씨)
당시 동네 골목에서는 이 게임의 기합소리인 ‘아도∼겐’, ‘어류∼겐’을 따라 외치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같은 대전 게임의 인기에 힘입어 국내 전자오락 시장도 급격히 커졌다.
한편 이 시기에는 가정용 오락기도 인기 절정이었다. 개인용 컴퓨터(PC)가 흔치 않던 시절, 오락실 게임을 집에서도 그대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가정용 오락기야말로 모든 어린이의 ‘로망’이었다.
20대 윤민석 씨는 “초등학교 시절 방과 후엔 매일 10명가량의 친구와 함께 집으로 몰려와 게임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대우전자의 ‘재믹스’, 닌텐도의 ‘패미컴’과 ‘슈퍼 패미컴(슈퍼 컴보이)’,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와 ‘새턴’ 등은 1980, 90년대를 풍미한 인기 오락기였다.
2000년 전후로는 ‘펌프’, ‘댄스 댄스 레볼루션(DDR)’, ‘이지 투 디제이(ez2dj)’, ‘비트 매니아’와 같은 리듬액션 게임이 전성기를 누렸다. 이들 전자오락은 오락기 하드웨어에 센서를 장착해 ‘몸으로’ 오락을 즐길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오락실에서는 모르는 사람 간에도 게임 실력의 우위를 가리기 위한 ‘배틀(대결)’이 벌어졌다. 이들의 발놀림과 손놀림이 화려할수록, 게임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전국 오락실 업주들의 커뮤니티인 ‘오사모(오락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운영자 조정준 씨는 “전국 오락실이 2만 개에 이르던 이때는 약국이나 편의점처럼 쉽게 오락실을 볼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그는 “그러나 PC방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게임의 인기와 바다이야기 파문 등으로 오락실은 2005년 전후로 급감해 현재 800개 이하로 줄어든 상태”라고 전했다.
비록 오락실 수는 줄었을지 몰라도 전자오락 기술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최근 터치스크린을 적용한 신개념 리듬 게임을 개발한 ‘펜타비전’을 비롯해 정통 아케이드 게임 개발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안다미로(펌프 개발사)’, 전자오락 기술에 각종 첨단 정보기술(IT)을 결합해 나가고 있는 스크린 골프 업계 등 그 가능성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온라인 게임 개발사 ‘넥슨’의 이주한 씨는 “세계 최고 수준인 국내 온라인 게임개발 역량 역시 어릴 적 오락실과 비디오 게임을 경험한 세대들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며 “새로운 기술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전자오락의 진화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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