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영국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등장한 강연자는 기다란 나무 지시봉을 들고 나왔다. 강연 시간이 길어지면 그것을 들고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세월이 흘러 가볍고 접히는 안테나 지시봉이 나왔고 1990년대 들어 레이저포인터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그런데 레이저포인터는 종종 빨간 점이 스크린의 참고자료 색깔과 구분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빨간 점보다 최대 30배까지 강렬한 빛을 내는 초록 광선의 포인터가 등장했다.
새로운 물건과 기술은 실패에 뒤따라온다. 좌절과 실망이 도전을 불러와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다. ‘실패 연구’의 대가로 불리는 듀크대 토목공학·역사학 석좌교수인 저자는 건축과 제품 디자인을 중심으로 실패와 성공을 분석했다. 이 책의 원제도 ‘실패를 통한 성공: 디자인 패러독스’이다.
교량의 발전사는 실패를 개선으로 이어간 경우로 설명한다. 얕은 개울에 놓은 징검다리와 통나무다리로는 깊은 물을 건널 수 없자 인간은 여러 개의 기둥을 세워 그 위에 다리를 놓는 디자인을 개발했다. 이어 기둥과 기둥 간격을 넓히는 다리 형태를 고안해냈다.
실패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롱아일랜드 철도에서 도입한 새로운 통근열차의 사례가 그렇다. 회사 측은 기존 열차의 좌석 재질이 딱딱하고 팔걸이가 짧다는 승객들의 불만을 받아들여 실리콘 재질을 사용하고 팔걸이 길이를 2.5cm 정도 늘린 새 열차를 도입했다. 찐득찐득한 실리콘 의자의 길어진 팔걸이에 옷이 달라붙어 찢겼다는 항의만 밀려들었다.
저자는 ‘실패의 30년 주기설’을 내놓는다. 대형교량 붕괴사고가 대략 30년을 주기로 발생했다는 데 주목했다. 1847년 영국 체스터에서 건설 중이던 대형교량이 무너진 이후 1879년 스코틀랜드 테이 강 다리 붕괴로 74명이 사망했다. 저자는 한 세대 엔지니어가 다음 세대와 교대하는 간격을 대략 30년으로 보고 세대 간 실패의 노하우가 단절되면서 이런 재앙이 발생했다고 본다. 실패의 교훈에 귀기울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