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帝 정당화 도구 악용’ 등 밝혀
“사진이야말로 근대 연구 학문의 고갱이입니다. 민속학 고고학 지리학 등 근대와 함께 시작된 학문들은 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죠. 그런데 이 자료들이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어요.”
이경민(41·사진) 사진아카이브연구소 대표는 국내 학계에서 드문 근대 사진사(史) 연구자다. 사진아카이브연구소가 디지털화해 정리한 근대 사진은 2만여 점. 이 씨는 이 사진들을 연구한 성과를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경성, 사진에 박히다’ 등 여러 책으로 냈다.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그는 2000년경까지만 해도 실재를 재현하는, 예술 사진이 전부라고 생각하던 사진전시 기획자였다.
그런 그를 괴롭히던 고민이 하나 있었다. 그는 1998년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한국사진역사’전 기획에 참여했을 때 일본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가 1910∼1919년 조선인을 찍은 사진을 접했다. 이 씨는 조선인의 신체적 특징을 측정하기 위한 이 ‘연구 자료’에 찍힌 사람들의 무표정을 예술 사진의 논리로 이해할 수 없었다.
“서양 제국주의는 식민지 사람들의 열등성을 인종적 차이로 구분했죠. 하지만 일제는 조선과 인종이 같아 근대화의 차이로 조선을 미개하다고 규정했습니다. 도리이 류조의 사진에 등장한 이들은 대개 못 배운 하층민이나 육체노동자, 백정이었어요.”
이런 사진에는 실재와 재현을 차이 나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이 씨는 “일제강점기는 사진을 찍은 주체와 찍힌 사람들의 권력 관계가 달라 사진이 당대 정치, 사회, 문화를 어떻게 반영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일제는 매체로서의 사진을 식민지배에 활용했다. “일제는 개발 전후의 경성을 비교해 찍은 사진을 박람회에서 전시했습니다. 식민 지배가 발전을 뜻한다는 인식을 조선인에게 내면화하기 위한 것이었죠.”
이 씨에 따르면 일제는 기생 사진을 특히 많이 찍었는데, 이는 남성화된 일본이 보호해야 할 연약한 여성의 이미지를 조선에 은유한 결과다. 조선을 찍은 일본인들의 여행 사진은 조선이 일본 영토에 속한다는 개념을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이 씨는 “근대 사진은 문헌 중심 역사학에 생긴 구멍을 메울 국가 기록물일 뿐 아니라 당대 도시 모습을 남긴다는 점에서 21세기 도시 디자인의 기초가 될 국가경쟁력 자료”라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