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환자 중에는 이혼한 분들이 많다. 병에 걸리고 나서 이혼당한 경우가 많고, 법적으로 이혼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병 치료를 위해 부부가 생이별하다가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연락이 끊기는 경우도 많다. …그런 안타까운 소식만 듣다가 할머니의 따뜻한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죽으나 사나 내 남편이라고 병에 걸린 남편 수발을 위해 자신도 한센병 환자라고 (거짓말을) 하여 섬에 들어온 할머니. 남편과 똑같이 치료약을 먹고 그렇게 평생을 남편의 병시중을 들며 살아온 할머니. 그런 할머니의 헌신과 사랑에 마음 한구석이 저며 왔다.”》
사람과 사랑을 배운 소록도
전남 고흥군 남쪽 끝 녹동항에서 500m가량의 거리에 섬이 하나 있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5배에 생김새가 어린 사슴을 닮았다는 이 섬은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배경이 된 소록도. 나균에 의해 발생하는 만성면역성 전염병인 한센병에 감염된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요양하는 곳이다.
저자는 2007년 4월부터 1년 동안 국립소록도병원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며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지낸 31세의 내과의사다. 대학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소록도 근무를 자원한 그는 70세 이상의 고령자가 대부분인 환자들과 만나며 자신이 배우고 느낀 것들을 글로 옮겼다.
책을 관류하는 단어는 사랑과 성찰이다. 뇌중풍(뇌졸중)으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한센병 환자 할머니와 매일 아내인 이 할머니를 찾아와 하모니카를 불어준 할아버지의 사연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할아버지가 어느 날 사고로 숨을 거두자 할머니는 며칠 뒤부터 떠 넣어 주는 음식물을 뱉어냈다. 자원봉사자 한 명이 꾀를 내어 예전에 휴대전화에 녹음해 두었던 할아버지의 하모니카 소리를 들려주자 할머니는 다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뿐이었다.
“어느 날 할머니는 하모니카 소리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아셨는지, 갑자기, 정말 갑자기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떠난 세상에서 할머니는 더는 살 수가 없었나 보다.”
소록도는 저자를 가르친 공간이다. 의욕을 갖고 시작한 자원봉사가 시간이 갈수록 의무감으로 변해갈 무렵 한 자원봉사자를 만났다. 어떤 생각으로 봉사활동을 하느냐는 저자의 질문에 “자기수양 아니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만히 되돌아보니 내 봉사활동은 자기과시, 시혜, 생색내기,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봉사활동이었다. …내가 희생하여 상대방을 바꾸려 했던 어리석음이 부끄러웠다.”
가을이 되자 지천으로 널린 감나무에 홍시가 주렁주렁 달렸는데도 따는 사람이 없었다. 저자는 틈날 때마다 감을 땄고 상자에 담아 저장해 두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간호사를 통해 환자들이 감을 따지 않는 자초지종을 듣고 얼굴이 붉어졌다. 환자들은 손가락이 성치 않아 감을 따지 못하고 대신 자원봉사자들이 날을 정해 감을 따면 모두가 나눠 먹는다는 것이었다.
한센병에 걸린 부모를 두었지만 감염되지 않은 아이에 대해 언젠가 감염될 것이란 편견을 담은 말인 미감아(未感兒), 한센병 환자끼리 결혼을 할 경우 강제로 정관수술을 받게 했던 단종대(斷種臺)에 얽힌 일화도 담았다.
저자는 한센병이 유전되지 않으며 환자와의 접촉을 통해 쉽게 감염되는 질병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사회적인 편견이 물리적 고통보다 더 환자들을 아프게 한다는 말이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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