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저런 곳이 있었나.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풍경의 잔칫상 같은 영화입니다. 타르셈 싱 감독은 광고 촬영을 위해 17년간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인도 터키 체코 등 28개 나라를 돌아다니며 점찍어뒀던 자연과 도시, 건축물을 낱낱이 화면에 담았습니다. 꿈속을 헤매는 듯 헐거운 스토리는 멋진 풍광을 보여주기 위한 프레임에 불과합니다.
영화 초반. 주인공 중 하나인 인디언의 아내가 붙잡혀 간 곳은 인도 라자스탄 주 자이푸르의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잔타르 만타르는 ‘마법장치’라는 뜻입니다.
천문 관측과 일기 예보에 쓰인 계단형 돌 건축물이 줄줄이 늘어선 이곳은 1734년 완공됐습니다. 14개의 계단이 하나의 별을 향하도록 세워져 있습니다. 가장 큰 계단의 높이는 27m. 계단의 그림자로 낮 동안의 시간을 가늠하고 일식이나 계절풍의 변화를 예측했다고 합니다.
‘더 폴…’에서 이 천문대는 ‘아무리 오르고 올라도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고 끝없이 계단만 이어지는 절망의 미로’로 소개됐습니다. 인디언의 가련한 아내는 끝없는 계단의 절망에서 탈출하기 위해 허공으로 발을 내딛습니다.
또 다른 주인공 찰스 다윈의 파트너인 원숭이 월레스가 총에 맞아 죽는 계단식 건축물도 인상적입니다. 이곳은 자이푸르에서 서남쪽으로 500km 정도 떨어진 조드푸르 인근 아브하네리 마을의 찬드 바오리 저수지입니다.
9세기에 만들어진 이 저수지는 약 30m 높이의 사방 벽면이 3500여 개의 계단으로 가득 채워진 구조물입니다. 싱 감독은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에 네덜란드 판화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위스 에스허르의 ‘무한공간’ 이미지를 입혔지만, 무한공간과 더 닮아 보이는 곳은 찬드 바오리입니다.
영화 끝 부분에서 오디어스의 성이 위치한 장소로 나오는 ‘푸른 도시’도 조드푸르입니다. 1459년 세워진 메랑가르 성채를 둘러싼 구시가지 건물 대부분이 인디고블루로 칠해져 있습니다. 도시가 생겨났을 때 이주해 온 브라만들이 숭배한 시바 신의 상징이 파란색이기 때문입니다.
인도 출신 감독의 영화여서인지 주요 장면 배경은 대개 인도입니다. 이탈리아 티볼리의 빌라 아드리아나, 로마의 콜로세움, 터키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사원,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 중국 만리장성 등 세계의 위대한 건축물들은 짤막하게 스쳐 지나갑니다. 하지만 모든 대상을 최선의 각도에서 찍어낸 프레임마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사재까지 털어낸 싱 감독의 열정이 엿보입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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