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팀 헤더링턴(38) 씨의 인터넷 홈페이지(timhetherington.com) 첫 화면에 게재된 사진 속 글귀.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버려진 건물 벽에 적힌 자조적인 그라피티다. 1989년부터 7년간 계속된 내란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절망이 전해진다. 세계보도사진재단이 ‘월드프레스포토2008 올해의 사진’으로 선정한 그의 아프가니스탄전쟁 사진도 충격적인 장면보다 그것을 경험한 인간의 마음에 주목한 작품이다. 전쟁터 벙커에 앉아 이마에 손을 얹고 피로와 두려움에 혼란스러워하는 병사의 모습.》
월드 프레스 포토 2008 올해의 사진 팀 헤더링턴 전화인터뷰
전쟁-살생 등 극단적 상황에 처한 인간심리 포착에 주목
흔들리는 이미지로 두려움 극대화… 전통 보도사진 틀 깨
세계 보도사진 서울 순회전, 30일까지 공평아트스페이스
영국 리버풀 출신인 그는 옥스퍼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출판업자로 일하다 웨일스대에서 다시 사진을 공부했다. 노숙인들이 만드는 잡지인 ‘빅 이슈’에서 사진작가 경력을 시작해 프리랜서로 스틸 사진과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월드프레스포토상 수상은 2000, 2002년에 이어 세 번째다.
“내 이미지 작업이 그것을 접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사고의 실마리를 열어주는 통로가 되길 바랍니다. 스틸 이미지는 현장의 한 순간을 전할 뿐 사실을 충분히 설명해주지는 못해요. 월드프레스포토상 수상작은 12장 연작 가운데 한 장입니다. 전하려 한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죠.”
헤더링턴 씨는 ‘사진작가’보다 ‘이미지작가’로 불리길 원한다. 그의 작업 목적은 세상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아내 시각적인 수단으로 표현하는 것. 그는 “중요한 것은 어떤 이미지를 찾아내느냐는 것”이라며 “이미지를 어떤 틀에 담느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수상작은 2007년 9월 16일 아프가니스탄 코렌갈 계곡의 미군 벙커에서 촬영했다. 두 차례의 격렬한 공격을 받고 난 저녁. 간신히 살아 돌아온 병사의 겁에 질린 두 눈은 초점을 잃었다. 어둡게 흔들린 이미지에는 적절한 노출이나 호흡 조절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작가의 두려움도 담겨 있다. 현장을 또렷이 포착하는 전통적 보도사진과 성격이 다르다는 이유로 심사 과정에서 적잖은 논란을 낳았다.
“촬영 전후 네 달 동안 막사에서 병사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피사체의 진실한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면 그 마음을 먼저 이해해야 하죠. 현장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은 당연히 필요합니다. 스틸 연작과 다큐멘터리 동영상 작업에 집중하는 것은 그런 과정을 가감 없이 전달해 대중과 현장을 오해 없이 소통하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에요.”
헤더링턴 씨는 전쟁 사진만 전문으로 찍진 않는다. 작가로서 그의 관심사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의 심리.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전쟁터로 떠나게 만드는 것도 그곳의 젊은 병사들이 겪는 마음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사진작가가 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는 어떤 카메라를 쓸 것인가에 앞서 세계의 어떤 사안이 자신의 관심을 끄는지 먼저 고민하길 권하고 싶습니다. 주변 사람과 사물에 대해 눈과 마음을 열고 들여다보는 게 중요해요. 거기서 느낀 무언가를 어떻게 사진에 담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세계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헤더링턴 씨는 일할 때 외에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통화 당일 개인적인 용무로 뉴욕에 머물고 있던 그는 “보통 관광객처럼 소형 캠코더 1대만 들고 왔다”고 말했다.
“언제 어디서든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는 사진작가도 있죠. 하지만 나에게 카메라는 일상을 기록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사진 작업을 할 때는 매우 긴장된 감성이 필요한데, 산책이나 관광을 할 때는 그냥 자유로운 기분으로 세상을 느끼고 싶습니다.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죠. 나는 그냥 그런 스타일의 사람일 뿐입니다.”
월드프레스포토2008에 참가한 187점의 사진이 전시되는 ‘세계보도사진전 서울 순회전’은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공평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본상 수상작은 59점이다. 헤더링턴 씨의 다른 작품 3점도 함께 볼 수 있다. 동아일보 후원. 02-706-1170
○팀 헤더링턴 씨는…
△1970년 영국 리버풀 출생 △2000∼2004년 영국 국립과학재단 과학예술부문 회원
△2004년 영화 ‘라이베리아: 비(非)내전’, 2007년 영화 ‘말을 타고 돌아온 악마’ 감독
△2008년 로리 펙 어워드(영국의 국제카메라기자 상) 특별기사 부문
△2000, 2002년 월드프레스포토 본상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