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연극 ‘마리화나’…유쾌하고 능청스러운 ‘동성애 스캔들’

  • 입력 2008년 12월 18일 02시 59분


연극 ‘마리화나’의 한 장면. 사진 제공 바나나문프로젝트
연극 ‘마리화나’의 한 장면. 사진 제공 바나나문프로젝트
엄격히 통제된 궁궐 안에서 벌어지는 동성애 행각.

연극 ‘마리화나’는 1436년 조선 세종 시대를 배경으로 세자와 세자빈, 궁녀, 내시 간에 있었던 동성애를 그린 작품이다. 조선 궁중의 억압된 성문화를 다루면서도 관객에게 얼굴을 찡그리거나 진지한 고민에 빠질 시간을 주지 않고 시작부터 끝까지 웃음을 제공한다.

웃음의 첫 단계는 풍부한 상상력. 막역한 친구 사이로 나오는 세자와 내관 용보(오달수)는 ‘몽혼초’라 불리는 마리화나를 나눠 피우고, 세자빈 봉씨(서주희)와 궁녀 소쌍(채국희)은 인도에서 전해진 ‘카마수트라’를 보며 동성애의 비법을 연마한다. 동성애를 벌이는 이들은 밤에 붉은빛을 발하는 미확인비행물체(UFO)를 보며 음과 양의 위치가 바뀔 징조라고 받아들인다. 정사(正史)에 따르면 엉터리지만 그럴 법한 이야기로 받아들여도 큰 무리가 없는 설정이다.

두 번째 단계는 언어유희다. 복근이 발달한 내관에게 세자는 어두운 얼굴로 “자네는 왕을 꿈꾸는군”이라며 추궁하고, 질투심에 사로잡힌 세자빈이 “(매일 밤 다른 궁녀와 한다는) 메모라는 게 무엇이냐?”고 묻자, 궁녀 소쌍은 “‘매일 모했다’ 하고 적는 은어”라고 답한다.

세 번째 단계는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다.

용보가 살을 빼기 위해 개발한 윗몸일으키기나 세자빈이 거대한 절구공이를 들고 궁녀 소쌍과 아슬아슬하게 벌이는 성애 묘사, 새치름한 외모의 궁녀 딴지(양보람)가 순정을 인정받지 못해 자결한다며 가슴팍에서 잭나이프를 꺼내 능숙하게 휘두르는 모습에 관객들은 커다란 웃음으로 반응했다.

세자빈 봉씨가 동성애 문제로 폐빈된 사건은 정사에 기록된 역사지만 나머지는 모두 허구다. 진지한 고뇌나 메시지는 읽을 수 없으나 오락용으로 선택하기에는 적절한 선택이 될 것 같다. 2009년 1월 24일까지. 서울 명륜동 마방진극공작소. 02-764-7462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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