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마시는 와인] “형제끼리 힘 합쳐라”…화살 문양 교훈 새긴 라피트 레정드

  • 입력 2008년 12월 18일 08시 05분


“형제끼리 힘 합쳐라”…화살 문양 교훈 새긴 황금빛 와인

지난줄거리 - 와인을 잘 몰라 스트레스를 받던 정유진은 소믈리에로 일하는 고교 동창 김은정에게 연락해 매주 한 차례 과외를 받기로 한다. 정유진은 돔 페리뇽 수사가 코르크 마개를 발명해 지금처럼 샴페인을 마시고, 백년전쟁의 배경에는 와인이 있고, 샤블리는 토양이 중생대 바다여서 굴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차례로 배운다.

“유진아, 이거 한번 마셔볼래?”

김은정이 황금빛 액체가 유난히 인상적인 와인병을 오픈 해 따라 준다. “얼마 전 라피트 시음회에 갔다가 괜찮아서 하나 챙겨왔지. 라피트 로칠드 알지? 수백만 원 하는 그랑 크뤼 와인이니까. 물론 이건 모회사 ‘도멘 바론 드 로칠드’(라피트 그룹으로 통함)에서 나온 대중적인 라인이니 긴장은 하지 말고.”

잘 쿨링된 화이트 와인은 상큼하고 산미도 적당하다. 어제 저녁에 먹은 삼계탕과 잘 어울릴 듯한 맛이다. 소비뇽 블랑 특유의 풀잎 향이 신선함을 더한다. 라벨을 보니 ‘레정드’라고 적혀 있다. ‘레정드 보르도 블랑’이라고 김은정이 귀띔한다.

그런데 밑에 그려진 부러진 화살 5개(사진)가 눈길을 모은다. 병을 둘러보니 병목에도, 코르크를 씌운 캡에도 똑같은 문양이 있다. 도대체 뭐지.

“여기에 재미난 이야기가 숨어 있어. 유태인인 마이어 암셸 로칠드와 다섯 아들에서 시작된 로칠드 가문은 현재도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은행가 집안인데 마이어가 죽기 전 런던, 프랑크푸르트, 빈, 나폴리 등 세계 각국에 흩어진 다섯 아들을 불러놓고 화살을 하나씩 나눠 준 뒤 부러뜨려보라고 했어. 물론 쉬운 일이지. 그러자 마이어는 다시 화살을 하나씩 준 뒤 이번에는 한 명 씩 나머지 네 명의 화살을 모아 부러뜨려보라고 했어. 그런데 쉽게 부러지지 않았지. 마이어는 이를 빗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더라고 힘을 합치면 어느 누구도 위협할 수도 없다는 얘기를 다섯 아들에게 들려줬어.”

옛날 구전 동화에서 들은 얘기 같은 데 로칠드 가문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니 신기하다. 화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은 메타포를 갖고 있다보다.

“아버지 말대로 런던에 거주하는 셋째 아들 네이선이 중심이 돼 자본을 모았고, 네이선이 죽은 뒤에는 막내 아들 제임스가 그 역할을 했어. 제임스는 프랑스 왕실에 오르던 샤토 라피트를 30년 간 눈독 들였는데 19세기 소유주가 죽은 뒤 경매로 나오자 사들였지.”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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